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3월이 오고 / 장석남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3월이 오고 / 장석남

바람분교장 2020. 4. 25. 14:22

월이 오고

 

장석남

 

3월이 오고 또

저녁이 오네

열두 겹으로 사랑이 오네

물 이랑이 밀고 오는 것,

물 이랑이 이 강안을 밀어서 내 앉은 자리를 밀어서 나를 제 어깨에 초록으로 앉히고는 밀어서 가는데

불이 한 점이 켜지고 또 꺼지고

목련이 정수리에서부터 피어 내려오는데

처음의 서늘한 입맞춤이 조금씩

더워지고 더워지고

3월이 오고 꽃밭마다

꽃이 와 앉고

잎이 솟고 솟고

열두 겹 사랑이 오네

조금 더 작아져서 살아갈 일을

우리는 이마에 물들이네

초록 이마로 물들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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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지나 봄이 막 가져오는 것들은 꽃이고 생명이고 사랑이다. 흔한 비유이다. 중요한 건 그 흔한 얘기를 거창하게 했다면 아마도 뭐 그렇네 했을 것이다.

그러나 보아라, 흔들리지 않는 듯, 희미한 햇볕의 온기로부터 미시적으로 움직이는 에너지를 느껴보시라. 그 에너지가 열두달 굽이굽이 내 몸 속에 쟁여두었던 사랑을 꽃 피우는 것이고 그런 것은 물 이랑이 겹이져 오듯이 이 봄에 내게로 오는 것이며 네게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목련은 볕을 받는 정수리부터 온몸으로 내려 앉는 것이고 그래서 네가 내게 들어오듯이 온몸이 점점 조금씩 더워지는 것이고 다시 꽃이 피고 열두겹으로 피고 조금더 작아져서 살아가는 너와 나의 이마를 초록으로 물들이는 것이다. 이 얼나마 거대한 우주이고 순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