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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세계에서 춘천가기/이장욱 본문
생활세계에서 춘천가기
이장욱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진리와 형이상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갔네.
초중등학교 때는 우주의 신비와 시를 배웠지.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연애도 했는데
또 독재자를 뽑았구나.
춘천에는 호수가 있고 산이 있고 깨끗한 길이 있지.
여자와 남자와 개들과 소풍이 있고
할머니도.
인사를 하고 밥도 먹었네.
나는 춘천에 들렀다가 그리스와 신라시대를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저는 종교적인 인간이라 매일 기도를 합니다만
고백성사를 한 뒤에 영성체를 모셔야 합니다만
아아, 유물론은 옳았다.
춘천에서 나는 죽어가는 시절의 고독을 떠올리고
사후의 무심을 생각하고
길거리의 개들과 눈을 맞추었네.
생활세계에서 춘천을 가는 일
그것은 할인마트에 내리는 석양처럼 신비로운 일
낮잠에서 깨어난 오후처럼
비변증법적인 일
열차가 북한강의 긴 교량을 건널 때 옆자리의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어대자
바로 그 순간 온몸에 스며드는
정확한 일
2017년 현대문학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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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던 아이도 자지러지게 울게 하는 춘천이 등장한다.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춘천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2020년 4월 15일 전까지라고 말하고 싶다. 적어도
아직 영 넘어 신라시대 강릉도 있고 저 아래말인 경주도 있지 않은가.
이제 생활세계에서 숨을 쉬고 사랑도 하고 밥도 먹는 그런 동네가 되었다. 춘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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