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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바람분교장 2020. 2. 20. 13:54

달나라의 장난

 - 김수영


팽이가 돈다
어린아이이고 어른이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로워 물끄러미 보고 있기를 좋아하는 나의 너무 큰 눈 앞에서
아이가 팽이를 돌린다

살림을 사는 아이들도 아름다웁듯이
노는 아이도 아름다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손님으로 온 나는 이집 주인과의 이야기도 잊어버리고
또 한번 팽이를 돌려주었으면 하고 원하는 것이다

도회(都會) 안에서 쫓겨 다니는 듯이 사는 나의 일이며
어느 소설(小說)보다도 신기로운 나의 생활(生活)이며
모두 다 내던지고 점잖이 앉은
나의 나이와 나이가 준 나의 무게를 생각하면서
정말 속임 없는 눈으로지금 팽이가 도는 것을 본다

그러면 팽이가 까맣게 변하여 서서 있는 것이다
누구 집을 가보아도 나 사는 곳보다는
여유(餘裕)가 있고 바쁘지도 않으니마치 별세계(別世界)같이 보인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팽이 밑바닥에 끈을 돌려 매이니 이상하고
손가락 사이에 끈을 한끝 잡고
방바닥에 내어던지니 소리 없이 회색빛으로 도는 것이
오래 보지 못한 달나라의 장난 같다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돌면서 나를 울린다
제트기(機) 벽화(壁畵)밑의 나보다 더 뚱뚱한 주인 앞에서
나는 결코 울어야 할 사람은 아니며
영원히 나 자신을 고쳐가야 할 운명(運命)과 사명(使命)에 놓여있는 이 밤에
나는 한사코 방심(放心)조차 하여서는 아니 될 터인데
팽이는 나를 비웃는 듯이 돌고 있다

비행기 프로펠러보다는 팽이가 기억(記憶)이 멀고 강한 것보다는
약한 것이 더 많은 나의 착한 마음이기에
팽이는 지금 수천 년 전(數千年 前)의 성인(聖人)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 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팽이가 돈다
팽이가 돈다


195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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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으로 살고 있다. 도는 힘이 다하면 쓰러지고 죽는 것이다. 스스로 돌면서 지구에 중심을 잡고 서 있는 동안 우리는 균형을 갖추며 사는 것이다. 인간에게는 아니 생명체에는 항상성이란 게 있다. 스스로 균형을 맞추려는 성질이나 자가치유 같은 걸 말한다. 팽이도 신이(아이가) 던져 놓는 순간 그 힘으로 그 힘이 다 할 때까지 꽃꽃이 서 있다. 비틀대면 균형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다. 인간 운명의 장난 같다. 보면 다들 나보다 잘 사는 거 같고, 여유가 있는 거 같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사람이 살아가는 게 참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게 팽이가 돈다는 게 아닐까.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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