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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최계선_ 고라니

바람분교장 2017. 10. 27. 13:53

고라니

 

                   최계선

 

식물도 사람 발자국 소리 알아듣고

알아들은 만큼 큰단다,

씨 뿌렸다 될 일 아니고

밭에 자주 다녀야 된다는 어머님 말씀인데,

 

오리걸음 호미질 끝내고 뒤돌아보면

벌써 밭고랑 뒤덮으며 쫓아오는 풀들,

온 사방은 풀들로 가득한데, 얘네들은

우리가 먹을려고 심어놓은 잎사귀들만

골라서 뜯어먹고 간다, 널린 발자국들.

쟁기질이 무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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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계선의 고라니는 참 재미있는 시다.

나는 이 시를 보면서 대칭성의 회복이라는 측면에서 흥미롭게 보았다. 우리가 잡초라고 생각하는 풀도 알고 보면 이 세상의 쓸모가 있어 핀 것인데 인간의 관점에서 잡초고 쓸모없다는 딱지를 붙이고 걷어낸다. 자본주의가 시간을 분절하기 이전의 세상에서는 어느 정도 대칭성이 지켜졌다고 본다. 인간과 다른 생물들 간의 대칭성을 통해 건강한 균형을 이루어왔다. 그러나 산업자본주의의 기계화 수탈 이후 그 대칭성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다. 여기 시를 보면 우리는 곡식을 키우기 위해 잡초를 제거하기 위해 호미질로 김을 매고 있지만 풀들의 생명력은 인간이 키워내는 곡식에 비할 바 아니다. 거기에 고라니는 잡초를 뜯어내고 키운 곡식만을 잡초 제거하듯 뜯어먹는다. 고라니나 우리나 같은 식성이다. 같이 살아야지 별수 있나. 고라니의 균형 감각이 대단하다. 이것은 시인의 균형 감각이기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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