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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길모퉁이_아폴리네르

바람분교장 2017. 1. 9. 15:07

길모퉁이

             아폴리네르

 

불상한 늙은이들이 발을 동동 구르며 기다리고 있다, 일 시켜 줄 사장 하나 없나.

그들은 기다리며 몸을 떤다, 호주머니에 두 손을 넣고.

그들은 서로 말을 나누지 않는다, 알지도 못하는 사이기에.

이따금 그 가운데 하나가 구시렁댄다, 씨팔 하느님 제발,

아주 낮게.

 

삯마차가 인도에 바싹 붙어 지나가며, 그들에게 흙탕을 끼얹고

외투를 걸친 행인들이 그들을 보지도 않고 밀치고

비가 자주 그들의 뼛속까지 젖어들고

그들은 저고리 깃을 세우고 등을 조금 더 구부리고

이런 씨팔 하느님 이런 씨팔 중얼거리며 기침을 한다.

 

그날까지 저럴 것이다, 자선병원에서

성한 데가 없구나탄식하며 남은 생명을 검은 가래로

뱉어내는 그날까지,

그들은 아마도 아픈 아이처럼 울고

죽어 가며 중얼거리겠지 : 거기 가면 하느님이 일을 시켜주나?


                       기욤 아폴리네르<사랑받지 못한 사내의 노래> 황현산 역, 민음사, 2016. 중에서


혼자 담벼락에 중얼거린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최고의 선은 인간의 목숨이 아니다. 그건 이미 과거의 가치일뿐. 자본의 최고 가치는 경영효율화를 통한 최소비용으로 최대의 수익을 내는 것이다.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것은 변하지 않는 도그마 같다. 품질에 문제가 생기면 더 큰 손해를 본다는 거 누가 모르나, 더 잘안다. 그래도 경영효율화란 이름으로 비용을 절감한다고 사람을 줄인다 단가를 낮춘다. 이 사회의 경영원칙은 이거 뿐이다. 어디고 마찬가지다. 
누군가 일을 하다 죽는다는 거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죽음에는 그에 맞는 애도의 방법이 있다. 어처구니없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그를 방치하고 대책회의를 먼저했다니, 짐승도 모자란다. 이제 욕도 안 나온다. 여론은 대책을 넘어 자조한다. 과연 이 시대에 대책이 있을까? 그건 어느 정부라도 마찬가지다. 백년 전에도 백년 후에도 마친가지다. 삼성 같은 애들이 나라를 주무른다. 정부는 일자리를 만든다고 난리다. 만들면 뭐하나. 그렇게 죽어갈 것인데
인력시장은 세상 어디에나 있다. 비단 우리만의 풍경은 아니다. 세상의 어느 모퉁이에는 이런 사람들이 일을 기다리고, 또 이들을 기다리는 가족이 있다. 눈비가 오지 않아도,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들은 이미 뼛속까지 젖어 있다. 이들이 지치면 근로의욕마저 잃고 노숙자로 살아간다. 
그나마 아폴리네르가 살던 프랑스에서는 자선병원에서 마지막을 보냈나 보다. 이게 초창기 자본주의 모습니다. 100년이 넘어도 이 모습은 바뀌지 않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모퉁이에 이들은 꼭 있다. 하늘가서도 일을 해서 자신의 생의 목적을 찾고, 가족을 보살피길 기원하는 이들이 꼭 있다. 죽어서까지도 일에 매여 사는 이들, 자본주의가 각인한 삶의 목적은 이다지도 가혹하다. 
그들이 누구겠는가! 당신이나 나 아니겠는가!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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