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여승 _백석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여승 _백석

바람분교장 2016. 3. 7. 18:38

여 승(女僧)
                         백석

여승(女僧)은 합장(合掌)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平安道)의 어느 산 깊은 금덤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다
여인(女人)은 나어린 딸아이를 따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

섶벌같이 나아간 지아비 기다려 십년(十年)이 갔다
지아비는 돌아오지 않고
어린 딸은 도라지꽃이 좋아 돌무덤으로 갔다

산(山) 꿩도 섧게 울은 슬픈 날이 있었다
산(山) 절의 마당귀에 여인의 머리오리가 눈물방울과 같이 떨어진 날이 있었다


---------

좋은 시는 정말로 말이 필요없다. 한 사람의 서러운 인생이 있고, 그걸 돌이켜보는 한 삶도 있다. 떠나간 남편과 아이가 있고, 결연한 의지가 눈물도 흘린 줄 안다. 한 인간의 삶이 이렇게 압축적으로 그려지기는 쉽지 않다. 정말로 아름답고 슬프고 아프다.
나에게는 외할머니가 두분이시다. 내 어머니의 어머니는 아흔아홉인데, 딸 하나를 낳고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그분이 지난 금요일에 돌아가셨다. 일을 던져두고 가려는데, 화장문제로 일요일 상이 나가기 어려워 발인을 월요일로 하겠으니 빈소를 토요일부터 차리겠다고 연락이 왔다. 뭔가 불편했는데, 불길한 느낌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토요일 빈소를 차리고 문상객을 받는 동안 일요일에 작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하루 늦게 발인하면서 일이 어그러졌다. 두 분 할머니 입장에서 본다면 기가막힐 노릇이다.
발인을 하루 더 미뤄 두 분을 같이 발인하기로 하였다. 두 분 오랜 세월 불편했던 동거가 세상 하직하는 날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불행한 일이지만, 장례를 치루는 상주들의 입장에서는 두번 치룰수 없으니, 같이 하자는 것도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부고를 넣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인간을 안다고도 세상을 안다고도 할 수 없도록 운명은 가혹하다. 두 분 저 세상 가셔서는 서로 얽매이지 말고, 인간의 인연에 깃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사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