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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봄밤 _ 김수영

바람분교장 2016. 5. 12. 18:09

  

봄 밤

 

김수영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

오오 봄이여

 

한없이 풀어지는 피곤한 마음에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너의 꿈이 달의 행로와 비슷한 회전을 하더라도

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기적소리가 과연 슬프다 하더라도

너는 결코 서둘지 말라

서둘지 말라 나의 빛이여

오오 인생이여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

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

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靈感)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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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올 때는 더디게 와도 한번 온 봄은 빠르게 지난다. 하루 밤이 지나면 무성한 곧 여름이다.

 

봄 같은 사랑은 애가 탄다. 서둘지 마라, 서둘지 말라고 아무리 타이른들 청춘이 그렇고 봄이 그렇듯 느리게 와서 빠르게 지난다. 애가 타는 마음은 아둔하고 가난하기에 초조해 하고, 아무렇게나 질러버리고 싶어진다.

 

봄이 온 세상을 순식간에 변화시키듯 사람들은 무엇인가 빨리 이루고 싶어 한다. 천천히 준비하라. 준비하는 시기부터 무엇인가 거대한 것을 이루려고 하기 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절제가 필요하다. 곰곰이 생각다보면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것이다. 다른 무엇이 벼락치기처럼 지나가도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도. 빨리 인정받고 싶어서 서두르지 마라.

 

사랑도 그렇다. 현재를 즐기는 거, 지금 이 순간순간을 소중하게 즐기는 거, 그런 게 필요한 때다. 봄이 되어도, 세상이 바뀐 것 같아도, 아직 겨울 같고 아직 바뀐 것이 없이 어제가 오늘 같은 그런 날이 지속되어도, 나만 불행한 거 같고, 나만 피 터지는 거 같아 마음을 초조하게 하여 맘을 상하지 말라. 그런 날이 반복되는 거 같아도 분명 봄은 오고, 봄밤처럼 순식간에 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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