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키르티무카 / 함성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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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탕진하고, 육신을 탕진하여
자신의 죽음을 장식하는 이의 삶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당신들의 바깥; -- 나는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서 바람과 태양의 즐거운 바깥을 들으며 곡기를 끊고 나의 죽음을 기다릴 것이다 그러니 체제여 제발, 나에게 국민연금 내라고 자꾸 비문학적인 엽서나 보내지마라 나는 한탕을 꿈꾸다 굶어죽을지언정 연금생활자는 되지 않겠다
7
나는 저 초원의
사슴과, 자작나무와, 창공의 새들에게만
끓어오르는 나의 노래를 납세하겠다
나는 근대의 서류에 사인한 적 없으므로 나를 당신들의 안전선 밖에 남아 있도록
내버려두라
거리에서, 허공에 대고 맹렬하게 울부짖는 광인의 분노와 그들이 보고 있는
당신들의 시선너머에 있는 다른 곳
혹은, 술과 기타 앞에서만 자유로운 영혼들
제발
8
나는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맥주 한 캔을 운전대옆에 꽂고 안개에 덮힌 자유로를 질주하고 싶다 취기와 분노와 속도가, 풍경이, 뭉개지고 섞이어, 동서남북, 위아래의 구분이 없어지는 무중력의 완전한 상태가 나는 좋다 함께 사는 세상을 위한 기부금, 천 원이면 이 아이가 살 수 있다고 내미는 흑백사진, 저를 도와주시려거든, 제발 무엇이든 제 손에 쥐여주세요 마약은 인생의 무덤이라는 충고,
다아 필요 없다
9
나에게는 당신들의 바깥에 있을 자유가 있다
그 무엇에도거기에 끼어들 수 없다
만약, 그러하시다면.....,
죽여버리리라
----<검은 말씀> 중에서
건축가이며, 시인인 함성호 형,
건축이란 문명의 징표인데, 그런 문명 앞에서 문명을 뒤집는 시가 이번 키르티무카<영광의 얼굴>이 아닌가 합니다. 책날개에 쓰인 말대로남의 생명을 먹고 사는 이미지이자 영원히 닫히지 않는 욕망의 원인을 보여주는, 빈, 텅빈, 허방,
바다 앞에 서면 언제나 느끼는 절망감, 사실은 그건 영원히 닫히지 않는 욕망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절벽 앞에 선 무한에 대한 공포 같은, 내가 이것 밖에 아니구나, 하는 공포 앞에서의 오르가슴 같은 거가 아닌가 하였습니다.
내 인식의 바깥은 거짓이므로, 당신들의 바깥이라 한 형의 정직함에 안심하고, 시를 읽었습니다. 당신들의 바깥을 상정하자 묘하게 이 세상은 개관할 수 있는 크기로 축소되더군요. 무한반복 되는 인간의 신화 앞에 느끼던 답답함에 초월적 자리를 마련하는 바깥,
가벼운 예로 문명이라는 체제의 바깥, 허기에 시달리는 자본주의의 바깥, 시간을 권력과 욕망으로 만든 근대의 바깥, 분절된 시간의 바깥에서 느끼는 비애, 쉽게 상상이 가지 않는 내 주위의 편리로부터 벗어난 바깥, 내가 안주한 삶을 전복하여 보여주는 신화를 그의 시에서 읽습니다.
그래서 모순 속에 살아가는 나의 얼굴, 그걸 내가 보는 게 '키르티무카'가 아닌가 합니다. 또 거기에 낯설게하기의 신화가 겹쳐 있네요.
그가 들려주는 신화 한 자락이 이 시집 전체를 조망하네요.
" 어느 날 파괴와 창조의 신 시바는 한 불경스러운 괴물을 멸하려다가 다른 엉뚱한 괴물을 낳아버버리게 된다. 심함 뻐드렁니에 피골이 상접한 이 괴물은 나타나자마자 참을 수 없는 허기에 시달린다. 이 엉뚱한 괴물은 나타나자마자 참지 못하고 먼저 온 괴물을 먹으려고 든다. 이에 놀란 먼저 온 괴물은 시바에게 도움을 청하고, 시바는 까닭 모를 괴물에게 먹지 말라고 명령한다(인도의 신들에게는 그것이 누구이든 간절하게 원하면 들어주어야할 의무가 있다). 그러자 까닭 모를 허기에 시달리고 있는 괴물은 시바에게 항변한다.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당신이 나를 이토록 하기지게 만들었으니 나는 이 괴물을 먹어야겠소." 시바는 대답한다. "그렇게 배가 고프면 너 자신을 먹어라!" 그러자 이 괴물은 정말 자신의 발부터 시작해서 두 다리, 두 팔, 몸통까지 다 먹어치운다. 얼굴 하나만 달랑 남은 괴물은 그러고도 계속 허기에 괴로워한다. 시바는 이 어이없는 상황 앞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삶이라는 게 무엇인지 이토록 그명하게 보여준 예를 나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내 너를 '키르티무카'라고 부르리라." 그러고는 이어서 이렇게말했다. "누구든 너를 예배하지 않는 자는 나에게 올 자격이 없다." - 함성호 시집 <키르티무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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