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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애니메이션이야기

드레곤 길들이기 / 한승태

바람분교장 2010. 8. 23. 21:23

 

 

드레곤길들이기 


장르 : 모험, 코미디, 가족, 판타지

제작국 : 미국

상영시간 : 98 분

감독 : 딘 데블로이스,크리스 샌더스

개봉 : 2010.05.20 


  Written by 한승태

 

 

드림웍스가 몬스터하우스 이후 최고의 히트작을 내놓았다. <릴로 앤 스티치>의 감독이었던 딘 데블로이스와 크리스 샌더스를 영입하여 재미있는 이야기와 시원한 영상을 선사하였다. 지브리 미야자키 하야오도 나는 것에 대한 동경과 동심을 그리는데 항상 즐거움을 갖는다고 하였지만, 드레곤 길들이기의 비행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 <드레곤길들이기>는 영국작가 크리시다 코월의 동명 동화를 원작으로 한 애니메이션이다. 물론 원작을 애니메이션에 맞게 재해석하여 성격과 동작을 더욱 감칠 맛나게 살렸다.

 

 

우선 영화의 전반부에는 영화가 그렇듯 이야기의 설정과 세계관을 보여준다. 영화 처음에서 주인공 히컵의 나레이션을 통해 일곱 세대를 지나왔지만 여전히 새마을인 불굴의 마을 버크가 공간으로 설정된다. 영화는 상상의 동물 드레곤들이 버크라는 마을을 습격하고 이를 방어하는 바이킹들의 모습을 통해, 이것이 현실의 일이라기보다 상상 속의 어느 마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다소의 과장과 뻥이 있더라도 당신들은 동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간다. 한마디로 뻥이라는 얘기다.

 

 

하여튼 이 마을에는 마을의 이름만큼이나 불굴의 의지를 가진 바이킹이 산다. 영화는 해충(드레곤)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굳건히 마을을 지키며 살아가는 바이킹들의 이야기다. 바이킹이 하는 일은 드레곤으로부터 마을과 식량을 지키는 것이다.

 

그런데 용감해야 할 바이킹 중에 바이킹 같지 않은, 마을의 모든 용감한 바이킹과는 판이하게 다른, 사고뭉치 바이킹 히컵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로서 마을 안의 왕따인 주인공과 마을사람, 그리고 완고한 아버지와의 내적 외적갈등도 설정된다. 주인공이 처음부터 용감했다면 아마도 재미없는 영화가 되었을 것이다. 히컵은 호기심은 많으나 앞뒤를 재지 않다보니 오히려 자신의 하려던 일과는 반대로 사고만을 일으키는 모든 어린이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서 자신의 뜻대로 모든 것이 잘 안 되는 어린이들과 동일시하기 좋은 주인공이다.

 

 

그는 마을의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사고뭉치여서 그의 완고한 아버지 스토익은 역전의 용사이자 대장장이인 고버의 대장간에 히컵을 맡긴다. 대장간은 불을 다루고 바이킹의 쇠를 다루면서도 뭔가 부족한 곳으로 설정된 듯하다. 고버는 역전의 용사라지만 몸이 불구이고, 그에게 맡긴 히컵은 아버지 스토익의 말을 요약하면 태어난 것 자체가 총체적으로 문제아이다. 한마디로 잉여로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똑 재미있는 것은 대장간은 쓸모없는 쇠를 녹여 칼이나 그릇 등의 쓸모있는 것을 만드는 곳이기에 히컵에게는 의미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을의 족장 스토익은 바이킹다움의 대명사로 맨손으로 드레곤을 때려잡는 등 용감하고 단호하지만 아들의 하는 짓에 뼈 속까지 실망한다. 그래서 히컵이 하는 일은 친구들이 드레곤의 습격에 마을을 위해 불을 끄고, 용감하게 맞설 때, 방해가 되지 않게 대장간에 틀어박혀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마음만큼은 여전히 히컵도 바이킹이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다. 하지만 그들과는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다르게 보인다. 겁도 많고 육체적으로도 부실하기 그지없다. 이런 나약한 히컵은 사냥과 용맹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바이킹 사회에서 배척당하는 존재다. 아버지조차 히컵이 밖에 나갈 때마다 사고를 쳐서 재앙을 불러온다고 믿으며, 히컵이 마을 사람들의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밤의 분노)’를 잡았다고 하여도 더더욱 믿지 않는다. 

 

 

 

 

 

 

  

이러한 내용을 설정하는데 영화의 처음 드레곤과의 전투신은 온통 할애된다. 심지어 전투에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요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다면 진정한 아이는 아닐 것이다. 당연 히컵은 다를 드레곤과의 일전에 다들 정신없는 틈을 타 자신이 만든 그물 투척기를 가지고 드레곤 중에 최고 공포의 대상인 ‘나이트 퓨어리’를 향해 얼결에 그물투척기를 쏘게 된다. 이로서 사건이 발생한다.

 

마을 사람들과 아버지의 실망을 뒤로 하고 그는 마을을 뛰쳐나와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하게 된다. 정말 히컵이 쏜 그물에 그가 잡힌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죽이지 못하고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왜 일까? 그는 나이트 퓨어리를 잡아가지고 가면 영웅이 될 텐데, 히컵은 그를 죽이지도 못했으며, 오히려 풀어주고 만다. 공포의 대상이던 나이트 퓨어리의 두려움에 찬 눈, 히컵 앞에 모든 것을 포기한 나이트 퓨어리를 보는 순간, 자신처럼 두려움과 겁에 질린 그 자신을 보고만 것이다. 그리고 이 만남 이후 그는 모든 바이킹의 직업인 드리곤 슬레이어의 길을 포기한다.

 

 

스토익은 마을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드레곤의 둥지를 찾아 섬멸하고자 한다. 드레곤과 바이킹의 본격적인 외적 갈등이 설정되고, 히컵의 처리를 고민하던 스토익은 고버에게 히컵은 물론 미래의 바이킹들의 교육을 맡기고 히컵에게는 도끼(바이킹의 상징)를 주면서 훌륭한 바이킹을 위한 수업을 참가하라고 독려하고 원정을 떠난다.

 

 

이로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진행된다. 나이트 퓨어리와 대면에서 드레곤 슬레이어의 길을 포기한 히컵에게는 오히려 드레곤 슬레이어의 훈련의 명이 떨어졌지만 슬레이어로서의 길보다는 나이트 퓨어리를 알게 되면서 드레곤에 대한 호기심을 키워간다. 드레곤 매뉴얼에 적힌 나이트 퓨어리에 대한 기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이 전부이다. 무조건 숨으라고만 적혔다. 바이킹에게 나이트 퓨어리는 미지이다. 관련정보가 없다. 보이지 않는 것이다. 실체가 밝혀지지 않은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선사한다. 시퍼런 강물과 바닷물이 무서운 건 그 밑을 우리가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귀신이 무서운 건 그 실체가 밝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히컵은 나이트 퓨어리를 관찰하고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나이트 퓨어리에 대한 정보를 얻게 된다. 드레곤이 무엇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는지, 그들의 약점이 무엇인지 알게 된, 최초의 바이킹이 된다. 그리고 나이트 퓨어리와 음식을 나눠먹으며 나이트 퓨어리가 이빨이 없다는 것과 꼬리를 다쳐서 제대로 날지를 못한다는 걸 알게 된다. 그가 대장간에서 배운 실력으로 나이트 퓨어리의 꼬리날개를 만들어 주면서 둘은 우정을 키워가고 히컵은 하늘을 날게 된 최초의 바이킹이 된다. 드레곤의 생태와 습성을 알게 된 히컵은 드레곤 훈련에서 본의 아니게 우수한 바이킹으로 인기를 얻는다.

 

 

 

  

 

하지만 그런 히컵에게 매번 선수를 놓치게 되는 아스트리드로서는 히컵에게 의문을 갖는다. 그녀는 자신보다 못한 히컵이 어떻게 매번 드레곤을 쓰러트리는지, 무슨 속임수를 쓰는 건 아닌지, 또 스승으로부터 혼자만 수업을 받는 건 아닌지 등등. 아스트리드는 부모들이 벌이는 드레곤과의 전쟁이 곧 자신에게 닥칠 것을 대비하는 진전한 용사인데, 매번 말썽이나 피우고, 사고나 치는 히컵이 자신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한편 히컵은 나이트 퓨어리와의 비행을 통해, 그리고 다른 용들과의 교감을 통해 자신들이 지금까지 알아왔던 용에 대한 무지를 깨닫게 된다. 이때가 바로 영화의 가운데로 이후부터는 새롭게 이야기가 전개된다. 즉, 나이트퓨어리와의 우정을 키워가는 중에 히컵을 수상하게 여긴 아스트리드가 히컵의 뒤를 쫒다 나이트 퓨어리(이때부터 나이트 퓨어리는 투슬리스(이빨이 없는)이란 이름을 갖게 된다)를 만나게 되고, 투슬리스의 등에 타 온갖 비행을 경험하고서야 히컵과 히컵의 방식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드레곤의 둥지를 찾으러 갔던 어른들이 돌아오고, 그 동안 훈련장에서 있었던 히컵의 영웅적인(?) 행동으로 인해 스토익은 히컵을 처음으로 인정하고 대화를 시도한다.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인정받아야 할 행동이 그동안 드레곤과 우정을 쌓아왔던 일을 뒤집는 것이었다. 하지만 히컵은 아버지 세대와 다르다는 것을 보여준다. 300년 동안 드레곤을 죽이고 싶어 하지 않는 최초의 바이킹으로 드레곤과의 화해를 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위험에 처한 히컵을 위해 나이트 퓨어리, 즉 투슬리스가 히컵을 구하러 오게 되고 마을사람들에 의해 잡히게 된다. 히컵은 드레곤이 마을 습격하는 이유에 대해 스토익에게 설명하지만 스토익은 그걸 인정할 수가 없다. 투슬리스는 드레곤의 둥지를 찾기 위한 배에 포박되어 떠나고, 이들을 내려다보던 절망적인 히컵에게 아스트리드가 용기를 준다. 히컵은 친구들과 함께 드레곤을 타고 투슬리스를 구하러 가기로 한다.

 

스토익은 투슬리스의 예민함 때문에 직감으로 드레곤의 둥지를 찾게 되고 투석기로 둥지를 부스고 드레곤들을 날려버렸지만 드레곤들의 여왕벌 같은 왕초 드레곤의 존재로 위험에 빠진다. 하지만 때맞춰 나타난 히컵과 친구들에 의해 자신들의 용기가 얼마나 큰 만용인가를 깨닫고, 히컵의 방식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물론 투슬리스의 희생적인 전투 덕분이지만 말이다. 드레곤과의 관계가 역전되어 친구로 되어버린 바이킹 마을은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드레곤 길들이기>는 드레곤과 인간의 관계를 다층적으로 묘사하면서 이야기의 진부함을 넘어선다. 모든 드레곤은 가공할 공격력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발견 즉시 죽여야만 하는 게 버크섬의 규율이다. 그 속에서 히컵과 투슬리스는 금지된 우정을 키워간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의 위크포인트를 주고 받는다. 나이트 퓨어리에 있어 꼬리날개를 히컵이 보충해 주고, 히컵의 나약함에 나이트 퓨어리는 용기와 새로운 날개를 선사한다. <드레곤 길들이기>는 적을 대하는 서로 상반된 입장을 묘사하면서 차이를 인정하자는 꽤 진지한 주제를 드러낸다. 히컵은 투슬리스를 통해 드레곤을 이해하면서 드레곤에 대한 두려움의 근원이 용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러한 오해는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생활과 문화에 널려있다.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이해만이 적개심을 풀고 이해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이다. 종교문제도, 남북문제, 전쟁문제도 그렇지 않을까?  

 

 

  

 

 히컵과 아버지는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두려움에 얼굴을 마주하는 것조차 버겁다. 최고의 바이킹인 아버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마을의 문제아로 낙인찍힌 히컵처럼 소외에 대한 두려움과 상처를 하루하루 실감하며 살아가는 우리 친구들은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와도 마주 보지 못했던 히컵이 공포의 상징인 드래곤의 얼굴을 직시하며 그 안에서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는 이 교감의 순간이 이 애니메이션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