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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와 한국 애니메이션(2)
Written by 한승태
태권도는 세계 속에 대한민국의 국위를 선양하며 국민적 자부심을 갖게 하였다. 자랑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이러한 자부심은 애니메이션 영화 속에서도 드러나 당시 선진 외국에 주눅 들었던 어린이들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주었다.3) 실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나 <로보트태권V>의 작품 속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의 태권 소년 ‘마루치’와 ‘훈이’는 외국의 선수들을 물리치고 경기(競技) 태권도의 영웅으로 그려진다. 이는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를 통해 유행하던 로봇물과 결합하여 여러 작품을 내놓게도 했다. 그리고 이것은 이후 제작되는 애니메이션의 프로타고니스트들이 대부분 태권도 유단자로 설정되게 하는 전범이 되었다.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소재는 우리의 무술인 태권도에서 가져왔다. 그리하여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우리 한국인의 긍지와 우수성을 자랑삼게 하고 나라사랑의 길을 걷게 하고자 하는’ 것이 작품의 의도였으며, 작품의 형식과 내용은 ‘공상과학적인 만화극으로 표현코자 한다’는 시나리오상의 작의를 살펴보아도 이러한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면서 ‘도장이 아닌 골목이나 뜰에서도 태권도를 즐기는 청소년들의 대련 놀이를 흔히 볼 수 있는데, 태권도를 함으로써 예의와 의협심을 바탕으로 한 인격을 완성하고, 기법의 수련으로서 자신은 물론 사회와 국가를 불의로부터 보호하며, 체력의 단련으로 국력의 배양과 협동심을 기를 수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당시 사회적으로 자부심이 고조되던 태권도의 정치적 위상을 실감케 한다. 이렇듯 ‘심신의 퇴보와 약화를 극복하는 수단의 하나로 우리나라의 자랑스러운 태권도’라는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시키겠다는 의지와 ‘공상 과학극이나 소설을 탐닉하는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더 태권도 정신이 필요하다’는 강변을 통해서는 제 4차 영화법을 옮겨 놓은 듯한 1970년대의 시대적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이렇게 우리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그 명맥을 이어왔다. 물론 거기에는 당시 사회적 함의와 정치적 함의가 결합되어 최고의 문화상품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에게 있어 애니메이션의 기획은 이런 사회적 함의와 트렌드를 읽는 작업도 매우 중요하다고 보인다.
최근 언론을 통해 새롭게 기획하는 실사판 <태권V>의 스토리의 탈고를 끝냈다는 소식과 새로운 컨셉 그림이 소개되었다. 새로 제작되는 태권브이의 탄생 스토리세계의 배경은 무엇일까? 옛 태권브이는 물질문명의 발전에 따른 두려움이었고, 이를 단련한 신체와 정신력으로 통제한다는 당위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세기의 태권브이의 이데올로기는 무엇일까? 단순히 옛날 향수에 의해 탄생하는 건 아니어야 할 것이다.
스토리 원작인 웹툰 만화 <브이>의 내용을 보면 훈이가 실직한 가장으로 설정되고 철이는 불구의 몸으로 태권브이를 몰래 만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럼 왜 태권브이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일까? 아버지의 귀환인가? 웹툰 <브이>에서 영희의 마지막 말은 ‘기다려라, 믿어보자, 아버지가 원래 그런 사람이야.’이었다. 이는 곧 우리시대 아버지가 그런 사람이야, 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럼 태권브이는 아버지의 귀환에 다름 아니다.
당대에는 못 먹고 못사는 대한민국의 어린이들에게 태권도를 배우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고, 외세에 주눅 들어 있던 아이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주었던 것이 태권도와 태권브이였다. 그렇다면 이제 태권브이는 우리에게 무엇인가? 이러한 시대적 요청이나 배경이 없다면 그냥 묻혀버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당대의 요청이 아버지를 믿어 보자이거나 아버지의 희생을 기억하자라는 것이라면 이건 그냥 추억물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1) 이영일 저, <한국영화史Ⅱ>, 『한국연극 · 무용 · 영화사』, 대한국민 예술원, 1985, pp. 779∼780
2) 1966년 3월 22일 태권도 협회가 구성된 9개국의 협회를 규합해 국제 태권도 연맹(ITF) 결성, 1967년 11월 30일 제정 품세를 심의 공포, 1972년 11월 30일 국기원을 건립, 12월 1일 태권도교본(품세편)을 발간, 1973년 5월 25일 서울에서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 1973년 5월 28일 세계태권도연맹(The World Taekwondo Federation:WTF)을 창립, 1974년 10월 18일 제1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개최, 1975년 10월 5일 국제경기연맹(International Sports Federation:ISF)에 WTF가 가맹, 1976년 4월 9일 국제군인선수권대회에서 태권도를 정식종목으로 채택, 1978년 10월 5일 KTA(Korea Taekwondo Association) 중심으로 단일화. (두산동아백과사전 태권도의 역사에서 국기로서의 태권도를 참고로 정리하였음)
3) 이는 1950년대 역도산(김신락)이 프로레슬링으로 전후 일본에 선사한 자부심과 비슷하다. 역도산은 강인한 체력과 가라데촙으로 1958년 세계선수권자인 J.S.루테스를 물리치고 헤비급 세계 챔피언이 된다. 당시 미국에 대해 주눅 들어 있던 일본 국민들에게 승리감과 더불어 자부심을 갖게 하였고, 이로 인해 그는 일본국민의 영웅으로 탄생한다. 또한 프로레슬링이 전국적인 붐을 맞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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