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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2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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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화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2편

바람분교장 2010. 3. 27. 15:35

한국 근대화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 2편


Written by 한승태

 

  

 

SF물이 그렇듯 <마루치 아라치>도 단순한 스토리 구조를 가지고 있다. 영화는 처음 과거 회상을 통해 복수의 원인을 보여주고 갈등을 설정한다. 이후 장 선생과 양 사범의 도움으로 체계적인 태권도를 배워 파란해골을 추적하여 복수하는 단순한 구조의 이야기이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복수로 움직이는데, 복수의 원인이 되는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 다음과 같다. 파란해골13호와 대결하는 할아버지의 대각선 인물구도와 붉은 색 배경은 불안을 야기 시키고 이를 통해 사건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이를 지켜보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의 배경도 온통 붉은 색으로 처리된다. 결국 쓰러지는 할아버지와 이를 장 선생에게 전하는 마루치의 눈동자 속에는 동굴 속의 모닥불과 겹쳐지면서 복수를 암시한다.

   

 

이 영화의 희생자는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를 키우며 무술을 가르친 스승이며 할아버지이다. 그는 영화의 시작 전에 희생당한다. 이처럼 범죄가 스승이면서 가족이기까지 한 인물에 대한 살인이기에 복수는 더 정당화된다. 복수 플롯의 특징은 범죄를 목격하게 만들면 효과가 커지고, 범죄가 끔찍할수록 호응을 얻는다. 관객이 범죄를 목격하여 정서적으로 사건을 경험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강렬할 뿐만 아니라 관객과 희생자 사이에 강한 연대감을 맺어준다. 이를 통해 감정이입을 느끼게 하여, 이 플롯의 중요 목적인 관객과 복수를 하는 주인공 마루치 아라치와 강한 정서적 다리를 놓아준다는 것이다.

 

 

        <마루치 아라치의 스승>                                     <파란해골에 납치된 장박사>

 

관객은 이들이 소개될 때, 첫 시퀀스에서 산속 동물들이 그들의 숙소 앞에 모여드는 것으로서 이들이 동물들과 교감을 나누며 자연을 지키는 정의로운 사람임을 알게 한다. 그래서 이들의 억울함이 관객들에게도 가슴 깊이 억울함을 느끼게 한다. 관객은 이런 끔찍한 분노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는 완전한 정의가 세워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러한 플롯을 사용할 때에는 정당한 행위와 정당하지 못한 행위가 무엇인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 한편 주인공이 추구하는 방법은 야생의 정의이기 때문에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이야기의 핵심에는 마루치와 아라치가 있고, 그들은 어려서부터 무술을 통해 심신을 단련한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유언대로 태백산에서 자연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천성적으로 자연친화적이고 불의를 참지 못하며 정의감에 불타는 소년소녀이다. 하지만 이들이 하고자 하는 바는, 스승이며 유일한 혈육인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복수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인적인 복수가 아니라 인류의 사회악을 물리치는 것이다. 이로서 영화는 갈등이 설정된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스승이기도 했던 할아버지를 갑자기 잃고 행복을 빼앗기게 된다. 그들은 범죄를 막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아직 파란해골에 대적할만한 힘이 없어 물러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파란해골의 범죄를 목격하였기에 복수를 꿈꾼다. 영화는 마루치 아라치와 파란해골 13호, 장 선생과 양 사범 등 캐릭터의 소개와 주요 갈등인 할아버지의 죽음을 통한 복수의 설정, 태권도를 통해 정의를 실현하는 스토리의 세계를 13분 30초라는 짤막한 시간에 탁월하게 설정한다. 또한 중간에 드러날 사건까지 촘촘히 직조해 낸다.

 

장 선생과 양 사범의 권유로 산을 내려온 주인공들이 양 사범으로부터 체계적인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본격적으로 복수를 계획한다. 이들의 훈련 장면에 등장하는 테마송을 보면 이들의 훈련이 무엇을 준비하는지 알게 해준다. 복수의 테마송이 나오는 동안 양사범의 지도로 밤낮과 눈비를 가리지 않고 이들의 훈련은 계속된다. 스틸 컷과 애니메이션으로 이들의 발차기, 격파, 날기 등의 태권도 수련과정이 효과적으로 전달된다.

  

 

대개 복수의 플롯은 등장인물의 의미 있는 탐색보다는 복수의 행위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따라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는 야생적이며 법의 테두리를 넘어서 그들만 집행하는 정의이지만 이들의 복수는 관객의 정서를 자극한다. 그래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복수가 법적으로는 아닐지라도 도덕적 정당성을 가진다. 이 작품에서는 타깃이 청소년이기 때문인지, 조력자로 경찰인 김 주임이 함께 동행 한다. 하지만 그의 역할은 미약하다. 사실 이들은 처음부터 양 사범과 장 선생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복수를 준비하게 된다.

 

태권도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마루치는 양 사범의 훈련으로 더욱 기량이 좋아져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게 되고, 여기서 뛰어난 재능 때문에 파란해골단의 표적이 되어 비수에 크게 다치게 된다. 이로서 복수를 위한 추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진다. 파란해골단은 동해 수중공원에서 열리는 ‘세계핵물리학자대회’에서 장 박사를 납치하고, 마루치는 해룡과 싸우다 크게 다쳐 실종되면서 반전이 발생한다. 그러나 실종되었던 마루치를 인어 유리가 구해주고, 마루치는 유리의 도움으로 해골섬을 찾아내지만 복수에는 실패한다. 이렇게 두 번의 실패로 마루치와 파란해골 13호 간에 팽팽한 긴장이 발생하고, 이제 이들의 극적 대결만 남는다.

 

  <파란해골 13호>                                              <마루치에게 상처를 입히는 공격단원 1호> 

 

 <기계적으로 변한 공격단원 1호> 

  

파란해골이란 캐릭터는 이 영화에 있어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파란해골은 인간의 생로병사를 연구하던 과학자였지만, 기계문명을 맹신해 자신의 몸을 없애고 해골만 남은 유별난 사람이다. 그는 인간의 심신이 거추장스럽다고 느껴 기계문명에 영혼을 맡긴 인물이다. 그래서 그가 발명한 기계로 부하들을 모두 기계인간으로 개조한다. 파란해골 13호는 인간의 신체를 기계화하는 근대화와 산업화의 상징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태백산에서 마루치와 아라치의 할아버지를 죽인 장본인으로 사람을 함부로 죽이고, 납치하며 설인국을 파괴하려 한다. 최종적으로 그는 핵물리학자인 장 박사를 납치하여 광속으로 나는 우주선을 만들어 지구와 우주를 정복하고자 한다.

 

                                      파란해골13호가 해골만으로 남게 되는 과정

 

이에 반해 기계문명에 대항하는 마루치와 아라치는 태권도 수련으로 심신을 단련한 정의로운 소년소녀이다. 그들은 인류의 악이자 할아버지의 복수를 꿈꾸며 외곬으로 마지막까지 달려왔다. 그들은 파란해골을 추적했지만 매번 복수의 기회를 놓쳐왔다.

 

 

[그림 5] 할아버지의 복수

 

파란해골 13호는 장 박사와 설인국 공주 쏘냐를 볼모로 잡고, 마루치와 대결하지만 마루치와 아라치의 정의의 주먹에 납작코가 된다. 그들의 복수는 할아버지뿐만 아니라 건강한 인류사회를 위한 행동이다. 그래서 복수의 원칙으로 처벌은 범죄와 맞먹는다. 심판은 법이 아닌 마루치와 아라치의 주먹으로 이루어진다. 마루치와 아라치는 할아버지의 복수에 성공하고 인류는 평화를 되찾는다. 복수는 파란해골이 기계문명을 맹신하고 잘못 사용한 자이기 때문에 마루치와 아라치는 그들의 몸과 마음을 수련하여 정의의 주먹으로만 응징해야 한다. 그래야 파란해골에 대한 정당한 응징이 될 수 있다.

 

산 위에서 자연인으로 살던 이들은 야생의 정의를 실천한다. 산위에서 일어나는 할아버지의 죽음도 문명화 되지 않은 야생이다. 이들에게 산은 야생의 공간이며, 문명이 억압하는 것을 표출하는 공간이다. 산위의 공간에 비해 이들이 하산한 도시의 공간은 문명의 공간이다. 그곳은 기계문명이 번성하는 곳으로 파란해골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 그들은 도시에서 파란해골과 첫 대면을 하게 된다. 문명의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 바다 속 수중공원이다. 그곳에서 장 박사는 납치되고, 마루치는 실종된다. 하지만 이들이 야생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다시 산 위로 올라가야 한다. 그들은 문명화되지 않은, 즉 원시가 그대로 보존된 히말라야의 설인국에서 최후의 대결을 벌이게 된다. 설인 또한 문명과는 거리가 먼 야생이다. 이들은 파란해골이 공주를 인질로 잡고 있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마루치와 대결하게 되나, 결국에는 야생의 자연이기에 마루치를 돕게 된다. 영화는 야생의 산 위에서 시작해서 문명화된 도시로 수중공원으로 이동한다. 이는 다시 야생의 공간인 북극기지에서 또 다시 히말라야의 산 속 설인국으로 옮겨 마지막 대결을 벌여 잘못 사용된 기계문명을 무찌름으로써 복수를 완성하는 공간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야생의 정의가 승리함으로써, 작품의 수직적 공간도 플롯에 상징적으로 기여한다.

 

 

 

이렇듯 <마루치 아라치>의 이야기 구조는 전형적인 복수의 플롯에 추적 및 구출의 플롯이 가미된 작품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복수의 플롯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에서는 그 복수의 원인인 파란해골 13호의 할아버지 살해에 대한 뚜렷한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 13호가 태백산에 파란해골단의 기지를 짓기 위해 마루치의 부모와 아라치의 부모를 살해하는 것으로 설정되었다. 그러나 임정규는 마루치와 아라치를 산속에서 신비한 무술을 배우는 소년 소녀로 그리고자 부모 대신 도사의 면모를 갖춘 할아버지가 파란해골에 살해당하는 장면으로 복수의 원인을 설정한다. 그리고 팔라팔라 사령관이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마루치를 보고 산에서 보았던 소년이라고 파란해골에게 보고하는 것으로 보아 이들의 원한관계는 좀 더 구체적으로 제시되었어야 했다. 하나의 완결 구조를 갖는 장편에서 이 같은 실수는 스토리구조상의 약점이라 할 수 있다.

 

 

       <팔라팔라 사령관>                                          <기계로 변한 팔라팔라 사령관>

 

어쨌든 복수는 정서적으로 강렬한 플롯을 만들어낸다. 정의를 갈구하는 상황을 창조하여 강력한 정서를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력적인 마루치와 아라치, 그리고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기계문명에 복수하는 <마루치 아라치>는 SF물로 당대의 시대적 상황을 핍진성 있게 그려내었고, 이는 관객에게도 정서적으로 영향을 미쳐 공감을 끌어낸 작품이 되었다. SF물이 미래의 불안한 징후를 드러내듯 작품의 극적 긴장은 냉소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

 

임정규의 <마루치 아라치> 속에서 그려지는 것은 대부분 인간과 과학의 평화로운 공존이 아니라 파란해골 13호로 상징되는, 과학이 제어할 수 없는 진보로 인해 파멸해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러면서 임정규 작품의 특이한 점은 보통 SF 작품에서 기계를 파괴하려는 인간, 혹은 기계 문명을 전복하려는 인간은, 그것과 싸우기 위해서 기계문명 내지 과학문명을 이용하는데 이 작품에서는 기계문명이나 과학문명이 아닌 신체를 단련하여 대항한다는 것이다. 특히 과학기술과 인간성의 충돌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테크놀로지의 지배 아래에 있는 세계가 얼마나 황폐하게 변질되고 있는가를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이로서 임정규는 당대의 현실을 SF로 변주하여 상징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능력은 이 작품의 시나리오와 그가 감독한 영화의 스토리텔링의 차이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시나리오에서는 파란해골이 전 세계를 귀신병에 들게 하여 지배하려고 하였으나, 그는 당시 고조되고 있던 산업화의 폐해와 두려움으로 스토리의 갈등 구조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당대의 사회적 문제를 충실하게 그려내고 있다.

 

마루치가 파란해골 13호에게 어떻게 복수를 해나가는가에서 주제의식이 돌출되는데, 이는 당시 시대정신과도 연관되어 있다. 영화는 일제의 수탈과 한국전쟁으로 황폐화되었던 1950년대를 지나, 급속도로 산업화가 진행되던 1960년대와 1970년대의 혼란스런 모습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를 통해 급격한 산업화로 치닫던 1970년대, 인간의 신체를 기계와 결합시키려는 자본주의적 요구에 대항하는 정신적, 신체적 저항을 보여준다. 인류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마루치의 욕망은 그것을 억압한 시대의 문제를 함축하고 있다. 기계문명의 폐해와 인류평화를 위한 인간의 확고한 정의감을 대립시켜서 인류의 적인 사회악이 기계문명을 교묘히 이용할 때 무서운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것과 기계문명은 어디까지나 인류의 이익을 위해서만 존재가치가 있음을 말한다. 따라서 악의 무리가 조종하는 기계를 정의의 주먹으로서 격파함으로써 몸과 마음을 갖춘 인격을 강조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