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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와 한국 애니메이션 (1) 본문
태권도와 한국 애니메이션(1)
Written by 한승태
요즘 남아공월드컵 대회로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남아공으로 집중되어 문화공연은 물론 일부업종을 제외한 곳에서 힘들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활용하여 스포츠와 애니메이션을 대단히 성공시킨 사례가 있다. 태권도가 그것인데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과 더불어 태권도의 위상을 높인 데에는 애니메이션과 어린이 라디오연속극의 역할이 매우 컸다. 마찬가지로 <로보트 태권V>와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성공과 명성은 태권도에 힘입은 바 크다.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던 1973년부터 시작된 MBC 라디오의 어린이 연속극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인기는 대단한 것이었다. 이는 태권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가 개최되면서 사회적 붐이 일어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또한 라디오극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와 ‘경기(競技) 태권도’의 인기는 태권도를 소재로 한 동명의 애니메이션 영화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1977>와 <로보트태권V, 1967>의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로보트태권V> 1탄이 성공을 거두자 당시 기획자였던 김일환은 따로 프로덕션 황금동화를 설립하고, 흥행의 진원지였던 MBC 라디오의 어린이 연속극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를 애니메이션 영화로 기획하여 문화영화업 허가가 있는 삼도필름에 명의를 빌린다. 이는 당시 영화법상 서울동화 -서울동화는 원래 박영일 감독의 프로덕션인데, <로보트태권V>의 기획도중 갑자기 작고하는 바람에 김청기 감독이 회사를 인수하였다. 당시 서울동화는 CF를 만들던 회사로 영화법에 의해 영화를 만들 수 없었다. 그래서 유 프로덕션에 이름을 빌려 <태권V>를 제작 개봉한다- 와 마찬가지로 황금동화도 문화영화제작 허가를 받은 제작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 애니메이션 역사에서 대명영화 문제는 나중에 별도로 다루겠다.
어쨌든 실질적인 기획자이며 제작자였던 김일환은 당시 <로보트태권V>에서 캐릭터를 디자인하고, 애니메이터이며 레이아웃 화가였던 임정규에게 감독을 제의한다. 이렇게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임정규의 감독 데뷔작이 되었다. 라디오 연속극의 원안은 김진희가 썼고, 각본을 민병권이 맡았다. 그리고 극장용 애니메이션 영화는 민병권의 각본을 송길한이 각색하였다. 그러나 실제 애니메이션 영화는 임정규 감독이 스토리보드 작업을 하며 대폭 뜯어 고친다. 원작이 라디오극이다 보니, 작품의 곳곳에 영상적인 장면보다는 설명적인 장면들이 너무 많아 시나리오를 그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특히 스토리와 캐릭터의 설정에서 많은 부분 수정이 되었다. 1977년 7월 27일 중앙극장에서 개봉한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는 당시 세계태권도대회 등 태권도 붐이 일었던 시대적 분위기와 원작 방송의 인기에 힘입어 먼저 개봉한 <로보트태권V-수중특공대>보다 크게 성공한다.
그러나 이런 애니메이션의 성공의 이면에는 1972년 이후 몇 년간 애니메이션 제작이 좌절된 역사가 있다. 1972년 군사정권의 극단적 형태인 소위 유신정부가 들어서면서 애니메이션 영화는 제작이 중단 되었다. 정부는 영화를 강력한 통제 아래 두려는 목적으로 영화법을 대폭 개정해서 발표한 것이다. 1973년 개정된 제 4차 영화법의 기본방향은 (1)유신이념의 구현을 위해서 영화계의 부조리를 제거하고 영화기업을 적극 지원하며, (2)우리 영화의 제작은 양보다 질에 치중하고 전통문화예술을 창조적으로 개발하며, (3)외국영화와 우리 영화 수출입도 민족문화의 우수성과 유신 한국의 해외 선양에 기여할 수 있는 영화를 정선 추천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수영화 제작 방침도 정했는데, 애국애족의 국민성을 고무 진작하는 내용과 민족예술에 기여할 고유문화의 전승 발전 및 순수 문예물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는 것이다.1) 이러한 유신이념의 강제적 주입과 검열의 강화는 영화예술을 위축시키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되었다. 따라서 1970년대 영화의 경향은 사회성 짙은 문제작보다는 사극(史劇)영화나 순수문예물이 주종을 이룰 수밖에 없었다.
문공부 신고용 <로보트태권V>시나리오 |
1973년부터 방송되었던 <마루치 아라치>의 원작을 각색하였다. |
1976년 7월 17일자 일간스포츠에 의하면, SF영화의 붐에 맞춰 유현목 감독이 제작한 장편 공상과학만화영화라고 소개된 것으로 보아 당대에 SF영화가 붐을 맞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당시 TV를 통해 소개되어 인기를 얻었던 <마징가Z>의 영향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세계적으로 공상과학물이 붐을 일으키고, 더불어 태권도의 인기가 높던 시절이었기에 흥행에는 자신이 있었던 듯하다. 또한 작의를 보면 미래를 지향하는 어린이들에게 과학적 호기심과 건전한 모험심을 고취하고 평화수호의 강한 의지와 인간 존엄성을 심어주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것으로서 영화법의 검열을 적극적으로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당시는 아무리 황당무계하더라도 반공이라는 말만 내세우면 심의에는 문제가 없었다. 이후 애니메이션의 제작은 <태권V>가 그랬듯 반공을 명목으로 내세우거나,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알린다는 취지 아래 태권도를 소재로 하거나, 해외 수출을 한다는 명목을 이용, 영화법의 검열을 피해 제작되었다.
하지만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의 제작은 반공이라는 명목보다는 당시 일고 있던 태권도의 열풍 때문이었다. 1970년대는 우리 것에 대한 긍지와 주체성을 살리자는 의식이 높았던 시기로 민족문화를 재인식하고 재발견하여 보존하자는 정부정책의 하나로 태권도를 알리는데 노력하던 시기였다.2) 이런 노력으로 해외에서 태권도 연맹과 협회가 설립되었다. 이어 이들을 초청하는 태권도 국제대회가 우리나라에서 개최되면서 국민들에게 우리 민족의 우수함을 알리는 큰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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