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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탄생 100년(?)과 한국 애니메이션

바람분교장 2009. 6. 17. 11:53

만화탄생 100년(?)과 한국 애니메이션


                                                                     Written by 한승태

 

 

만화가 탄생한 지 100년이 흘렀다고 한다. 하급문화로 취급받던 만화가 탄생 100년 만에 국립미술관에서 기념전시가 열리고 이에 관한 행사들이 전국적으로 진행되어 그 위상을 널리 알리고 있다.

 

 

여기서 100년은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에 처음 게재된 이도영의 그림을 기점으로 한다. 그의 당시 그림에는 신문의 나아갈 바를 표현했던 것이다. 이도영은 1910년 8월31일 '대한민보'가 강제 폐간될 때까지 목판화 만화를 통해 당대의 현실을 풍자하는 그림을 발표했다.

 

 대한민보 1909년 6월 2일, 이도영의 삽화

 

이도영의 시사만화는 혼란하던 애국계몽기의 시대적 감수성을 담고 있는 그림으로, 계몽과 풍자의 풍부한 표현담은 작품이다. <대한민보>는 시사만화와 논설, 단편소설 등을 통해 일제의 식민지 지배 욕을 풍자했다. 결국 <대한민보>는 검열로 기사는 물론 시사만화의 내용이 삭제되거나, 삽화가 삭제되고, 문이 압수되는 탄압을 겪다 1910년 8월 31일 폐간하게 된다.

 

  (위) 십우도의 두 컷이다. 십우도는 마음의 본성을 찾아 수행하는 과정을 소를 찾는 동자의 모습에 비유하여 그린 것으로 그림에는 분명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일련의 연속 그림이다.

 

이런 내용을 접하며 과연 우리 만화의 역사가 100년 밖에 안 되었나 하고 의문이 드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현재 100주년을 기념하는 만화는 연재하는 형식과 신문이라는 매체의 영향이 크다. 사실 조선 시대에 그려진 십우도만 하더리도 종교의 구도적 내용을 담고 있지만 만화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조선 명종 8년(1553)의 부모은중경언해 화장사판(華藏寺版)을 비롯한 여러 판본에도 내용에 따른 관련 목판화도 만화의 형식을 보여준다. 이런 삽화본 중에는 정조 때 김홍도가 그린 것도 있다. 김홍도의 풍속화적 화풍을 본다면 그것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그럼 이 그림들은 왜 만화가 아닐까?  

 

영국의 브리태니커 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만화(漫畵, comic strip)는 신문이나 잡지 또는 책에 수록된, 줄거리를 가진 여러 컷(또는 칸)짜리 그림이다. 글을 함께 쓰는 것이 보통이지만 전혀 없을 때도 있다. 서양에서는 사람이나 동물의 특징을 과장해서 그린 캐리커처(caricature)와 어떤 사건 또는 정치적·사회적인 풍조를 풍자하여 그린 1장짜리 그림인 카툰(cartoon), 줄거리가 있는 만화(comic strip : comic book도 포함)를 구분하기도 하지만, 한국에서는 카툰과 만화가 혼합되어 거의 한 개념으로 통용되고 있다.

 

이런 정의에 따르면 만화의 본질은 첫째, 재미있거나 사회를 풍자하는 등 비판의 기능이 있어야 한다. 둘째, 이야기가 있는 그림이어야 하고, 신문이나 책 등의 표현매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말하는 만화의 기원은 만화의 정의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15세기 유럽이 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이집트 상형문자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만화 형식 및 '만화'라는 단어 자체가 생겨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그리고 만화의 정의는 학자들 사이에 매우 의견이 분분하지만, 인쇄 형식이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하는 이가 있는 한편, 그림과 글의 상호연관성이나 연속성을 강조하는 이도 있다. 또한 만화의 매체에 대해서도 이견이 있다.

 

그러나 1985년, 윌 아이스너1)는 만화를 연속예술(sequential art)이라 규정하고 "그림과 단어를 배치하여 이야기를 만들거나 생각을 각색하는 것"이라 정의한 것이 대체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여기에 보완적으로 스콧 맥 클루드는 <만화의 이해,1993>에서 아이스너의 연속예술이라는 표현을 만화의 매체를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하며, 그것을 "정보를 전달하거나 보는 이에게 미적인 반응을 일으킬 목적으로, 그림과 그 밖의 형상들을 의도한 순서로 나란히 늘어놓은 것(juxtaposed pictorial and other images in deliberate sequence, intended to convey information and/or to produce an aesthetic response in the viewer)"으로 정의하고 있다.

      1936년 11월 26일 조선일보의 기사로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제작되던 토키만화(애니메이션)의 소식과 주인공의 한 포즈를 소개하고 있다. (위)

 

이러한 만화의 정의로도 보자면 한국만화의 역사는 훨씬 더 위로 올라갈 가능성이 다분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아무래도 19세기 후반 등장한 만화라는 말에 근거하여 그 이후 그려진 그림에서 만화의 원류를 찾으려는 시도에서 현재의 100년은 나온 듯하다.

 

 (위)1962년 제작된 <진로소주> 두 번째 CF의 스토리보드(콘티)이다. 이 작품의 성공으로  세기상사는 애니메이션 제작을 신동헌 감독에게 의뢰하게 된다.

그러나 만화와 가장 연관이 깊은 애니메이션의 시작은 매우 분명하다. 서양에서는 1892년 에밀 레이노가 프락시노스코프에 그려 영사한 그림에서 비롯된다. 또한 우리나라에서는 1936년 김용운 임석기 이 두 분이 <개꿈>이라는 애니메이션을 필름으로 142m 정도 제작하고 있다는 신문기사와 같이 소개된 주인공 캐릭터에서 시작한다. 이후 코주부 김용환에게 펜화를 배운 문달부가 제작한 <OB 시날코>라는 음료 CF와 <럭키치약>CF 애니메이션이 상영된 기록으로 최초이다. 이후 신동헌의 <진로소주>를 비롯한 수백 편의 CF 애니메이션은 첫 장편 홍길동의 밑거름이 된다.

 

 (위) 1966년 제작하여 1967년 1월21일 개봉한 한국 최초 장편 애니<홍길동>의 포스터

 

그리고 한국 애니메이션은 만화가 신동헌과 신동우 형제의 장편 애니메이션 <홍길동,1967>을 통해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우리나라의 최초 장편 애니메이션이 된 <홍길동>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다. 이 장편이 나오기까지 수백편의 CF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고, 그 과정의 기술축적을 통해 가능했으나, 어느 누구에게 제작기술을 배운 것도 아니고, 스스로 기술개발과 시행착오를 거쳐 장편 애니메이션을 탄생시켰다.

신동헌 감독이 그린 홍길동 캐릭터 (위) / 그의 동생 신동우가 그린 원본 홍길동 만화(아래)

 

애니메이션 <홍길동>의 원작은 만화가 신동우가 소년조선일보에 연재하여 당대에 큰 인기를 얻었던 <풍운아 홍길동>이 다. 만화는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을 모티프로하여 차돌바위라는 서브 캐릭터를 등장시켰고, 이후 차돌바위는 신동우의 페르소나라고까지 불렸다. 그리고 이를 그의 형 신동헌이 애니메이션 스토리로 약간의 개작을 하였다. 1965년 가을 기획을 시작하여, 1966년 1년 가까이 시행착오를 거쳐 1967년 1월 21일 서울의 대한극장에서 개봉, 당시 38만 명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흥행에도 성공하였다.

  

(위) 영화의 한 장면으로 곱단이의 아버지를 구한 홍길동과 차돌바위, 그리고 곱단이가 등장한다.

 

<홍길동>의 성공으로 <호피와 차돌바위>, <흥부와 놀부>, <황금철인> 등의 매년 애니메이션이 2편 이상의 제작되어 본격적인 애니메이션의 시대를 열었다. 우리 애니메이션은 초창기 옛 이야기나 만화를 원전으로 하여 제작되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동반 성장하게 된 것은 1987년 <아기공룡 둘리>가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을 제작되면서 이후 <달려라 하니>, <머털도사>, <날아라 슈퍼보드> 등의 만화가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로 제작되면서 부터이다. 

 

 (위)신동헌 감독의 동생 신동우가 그린 <홍길동>의 스토리보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이런 아름다운 동반자의 관계는 앞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최근의 경향은 게임과 애니메이션이 가까워지고 있다. 게임 속의 주인공이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등장(카트라이더 -->다오배찌붐힐대소동)하거나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이 게임의 주인공으로 등장(하양마음백구 --->백구게임)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 만화와 애니메이션에 대해 저급한 문화로 폄하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오히려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즐거운 독서와 시청을 오히려 학습이라는 효과와 목표로 전환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 앞으로 100년,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어떻게 변해갈까? 이는 지금 우리가 즐기는 애정의 척도와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만화와 애니메이션도 인간 삶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예술 매체임은 부정할 수 없는 시대이다.





1) 윌 아이스너

   미국 브룩클린 출생으로 초기 만화의 선구자이며 만화의 대가이다. 「원더맨 Wonder Man」과 「스피릿 Sprit」의 크리에이터로서, 「신과의 계약 A Contract with God」라는 작품으로 그래픽 노블을 개척했다. 만화업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알려진 "더 아이스너(The Eisners)"상은 그의 이름을 딴 상이다. 「만화와 연속예술」은 그가 여러 해에 걸쳐 스쿨오브비주얼아트(SVA)에서 인기리에 진행했던 강의를 토대로 쓰여 졌으며, 그래픽노블을 실제로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그의 생각과 이론, 실제적인 조언, 만화 예술이라는 형식이 어디에 적용될 수 있는가 등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만화 전문가와 만화를 배우고자 하는 학생, 그리고 만화를 가르치는 교사 모두에게 매우 유용한 책이다. 1985년에 처음 출판된 이후로 이 책은 미국은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나 일본과 같은 나라에서도 번역, 출판되어 폭넓은 호응을 받아오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많은 대학에서 영화 강의는 물론, 대중문화와 영문학 강좌의 교재로 채택되고 있을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