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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사과 나무 그늘 아래의 일/김창균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꽃사과 나무 그늘 아래의 일/김창균

바람분교장 2010. 3. 27. 14:03

꽃사과 나무 그늘 아래의 일

김창균

 

 

다산한 여자 같은 저 나무는 많이도 늙었다

몇 차례 온 몸을 쏟고 또 한 배를 갖은 걸 보면

몸통이 들썩일 정도로 숨소리가 크겠다

 

국적을 옮겨 시집 온 여자가 그

꽃사과 나무 아래를 지나간다

돌 지난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에게 무슨 말을 건네고 받지만

그 말이 무엇인지는 알 수는 없는 일

 

곰곰 무슨 말을 주고 받았을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이것은 푸른 말이 붉은 말로 옮겨 가는 일

그늘을 다 건너뛰고 저녁을 맞는 일

 

꽃사과 나무 아래서 하루를 산다 해도

알 수 없는 일 명명할 수 없는 일.

싹둑 전지한 자국, 욕망을 참은 흔적들만

알아듣는 내밀한 그 일.

 

                    <시로여는 세상, 2009 여름호>

 

 

시인의 능청을 보면 웃음이 나오면서도 결국에 가서는 엄숙하다 못해 전율이 온다. 사람 사는 일들이 자연의 일과 저토록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내밀한 경지를 김창균은 이토록 간단하게 해내고 있으니 감탄할 따름이다. 사실 좋은 시는 단단하고 군더더기가 보이지 않게 마련인데, 이 시 또한 말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나 읽으면 확연히 이미지가 떠오르고 의미가 직관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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