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 세르게이 예세닌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 세르게이 예세닌

바람분교장 2009. 2. 2. 17:34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세르게이 에세닌 *



이제 우리들은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고요함과 행복이 있는 그 나라로,

어쩌면 나도 곧 길을 떠날는지 모른다.

덧없는 세간살이를 치워야 한다.

 

그리운 자작나무 숲이여! 

너 대지여! 그리고 너 모래벌판이여!

이러한 떠나가는 동포들의 무리 앞에

나는 괴로움을 숨길 수 없다.

 

너무나 나는 이승에서 사랑했다.

넋을 육체 속에 싸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를 뻗고 장미 빛의 수면을 들여다보고 있던

미류나무에 평화가 있으라.

 

고요 속에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고

마음속으로 많은 노래를 지었다.

이 음울한 대지 위에서

내가 숨 쉬며 살았던 게 행복하다.

 

행복하다, 내가 여자들에게 입맞춤을 하고

꽃을 짓뭉개며 풀 위에서 뒹굴었던 게,

그리고 나 어린 우리 동포들처럼

짐승들의 마빡을 치지 않았던 게.

 

나는 알고 있다, 거기서는 숲이 꽃을 피우지 않고

라이보리는 백조 같은 목을 살랑거리지 않는다.

그래서 떠나가는 동포들의 무리 앞에서

나는 언제나 전율을 느낀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나라에는

안개 속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이러한 밭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사람들이 소중하다,

나와 함께 지상에서 살고 있는. 

 

                                             (1924)

 박형규 역 / 열음사 판 예세닌 시선집<자작나무 숲에서>중에서 

 

 * 세르게이 예세닌Sergei Esenin

1875년 태어난 러시아 최고의 서정시인이다. 10월 혁명에 열광 하였으나, 결과에 실망한 나머지 레닌그라드의 호텔방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시집으로 <변용,1917>, <동지,1917>, <요르단의 비들기,1918>, <이노니야,1918>, <나는 최후의 농촌시인>,<비틀거리는 모스크바,1924>가 있다.

 

 ps: 용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마친 분들께 바친다.

      어떤 시는 시에 담긴 진실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이 시를 보라. 이 처럼 담백한 진술이 오래도록 가슴에서 슬픔을 응축시키지 않는가? 인간 존재의 슬픔은 가려진다고 가려질 수 없으며, 꾸민다고 꾸며질 수 없는 것이란 걸 예세닌은 보여주고 있다. 러시아의 작가들은 우리 민족과 일정부분 무의식을 같이 공유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특히나 예세닌이나 고골리 같은 작가의 작품을 읽으면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와는 다른 친근한 감수성이 느껴진다.

   삶의 태도가 시가 되기도 하는데 이 시가 그렇다.  그에게 붙은  농민 시인이라는 호칭이 대지의 시인이라는 말처럼 들리는 밤이다.  그래서 떠나가는 동포들의 무리 앞에 나는 전율한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마빡을 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우리는 누구나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 시를 올리고나서 참 오랜 시간이 지났구나 할 새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다. 누구보다도 이 시를 그의 영전에 바치고 싶다. 물론 나의 시는 아니지만 이 시는 인간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선물이므로, 나도 전율을 느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