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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정주성(定州城)

바람분교장 2008. 10. 19. 16:11

정주성(定州城)

               

                            백석


산텃 원두막은 비었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 심지에 아주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무너진 성(城)터

반딧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 있는 듯이 크다란 산(山)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城門)이

한울빛간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정주성은 백석의 등단작이다. 어쨌든 그가 쓴 첫 시는 아니겠지만 앞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시는 우리나라 초창기의 모더니즘의 성취가 있는데, 이 시에는 그가 쓴 시에 드러나는 고독감이나 상실감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나온다. ‘무너진 성터’와 ‘헐리다 남은 성문’이 그것이다. 성이나 성문은 무엇인가를 막는 것이다. 그럼 백석의 시에서 무엇을 막고 무엇을 지키고자 했을까?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그의 초기 시에 등장하는 가족 공동체의 행복한 일상이며, 언어이며, 먹거리이며, 우리들의 삶 그 자치이다.

그러나 일제의 강제화 된 근대화에 성문을 헐리고, 성벽은 무너졌다. 더 이상 지키기가 어려워진 것이다. 그래서 그가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애틋함과 애잔함이 남아있다. 그의 후기 시에는 타지를 떠도는 이방인의 모습, 원자화 되어 공동체로부터 떠난 떠돌이의 고독감이 잘 그려진다. 이런 시가 바로 <흰 바람벽이 있어>, <두보나 이백같이>,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 같은 북방의 정서를 담은 시들이다.

어떤 이들은 그의 시를 전통시가의 전통을 잇는 시인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는 그가 사용한 시의 소재 때문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그 보다는 미학적 모더니티를 가장 잘 드러낸 시인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너니즘 시인하면 떠오르는 모 시인처럼 공장이나, 교회당, 기차, 셀로판지 같은 이국적인 언어와 풍경을 그리는 것이 모더니티는 아닐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공동체에서 떠나 홀로 되었다. 1960년대는 시골에서 떠나 공장의 공돌이와 공순이로, 건설 공사판으로, 술집 여급으로 살아가야 했으며, 이들에게 고향은 언젠가 돌아가서 금의환향해야 하는 곳이었지만, 매번 손에 돌아오는 것은 하루하루의 노곤한 일과뿐이었기에 마음으로만 고향을 그리워해야만 했고, 어쩌다 돌아가도 허세로 자신의 존재감을 세우고 돌아와야 했다. 그러면서 컨베어밸트의 부속품으로 빠르게 몸을 익혀갔다.

백석의 시가 아직도 우리에게 유효한 것은 이런 뿌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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