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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홍어 - 문혜진

바람분교장 2008. 11. 8. 17:37

홍어


                문혜진


내 몸 한가운데 불멸의 아귀

그곳에 홍어가 산다


극렬한 쾌락의 절정

여체의 정점에 드리운 죽음의 냄새


오랜 세월 미식가들은 탐닉해 왔다

홍어의 삭은 살점에서 피어나는 오묘한 냄새

온 우주를 빨아들일 듯한

여인의 둔덕에

코를 박고 취하고 싶은 날

홍어를 찾는 것은 아닐까


해풍에 단단해진 살덩이

두엄 속에서 곰삭은 홍어의 살점을 씹는 순간

입 안 가득 퍼지는

젊은 과부의 아찔한 음부 냄새

코는 곤두서고

아랫도리는 아릿하다


중복 더위의 입관식

죽어서야 허리를 편 노파

아무리 향을 피워도 흐르던

차안의 냄새


씻어도

씻어 내도

돌아서면 밥 냄새처럼 피어오르는 가랑이 냄새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는 밤

붉어진 눈으로

홍어를 씹는다






- 문혜진 시집 <검은 표범 여인>에서

 

    

     절대 잊혀 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 몸의 냄새이다. 죽을 때까지 간직하고 가는 것, 그리고 죽어서도 끌고 가는 것이 몸 냄새이다.

     내겐 어린 시절 배꼽냄새가 아직도 날 따라다닌다. 겨울이 시작되기 전 하교 길에 소나기를 맞고 돌아오면, 어머니는 막 추수를 끝낸 깻섶을 아궁이에 넣고 불을 떼셨다. 오들오들 떨던 내가 아랫목에 누우면 대낮이었지만 잠이 저절로 쏟아졌다. 그러면 여름 이후로 목욕 한번 하지 않던 젖은 몸에서 배어나오던 냄새, 배꼽에 쌓인 때에서 나던 냄새에 싸여 어머니의 나라를 떠돌다 오곤 했다.

     그 이후 청소년 시절 처음 수음을 하게 되고, 이후 내 성기에서 나던 냄새도 사실 그 배꼽냄새와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서리쳐지게 징그러운 냄새지만 그런 냄새가 자기애와 결합되어 그리운 날도 있다.  

     문혜진의 이 시에는 관능적이면서 죽음의 냄새가 배어있다. 그러면서도 중독성 강한 자기애가 있다. 홍어의 냄새만큼이나 강한 흡인력이 느껴진다. 미각은 우리에게 기억을 체화시키는 기능을 한다. 그녀의 시가 강한 흡인력을갖는 것은 후각에 의존하기 보다 미각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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