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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수라(修羅)

바람분교장 2008. 10. 19. 16:05

수라(修羅)

                 백석

 

 

거미새끼 하나 방바닥에 나린 것을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문밖으로 쓸어버린다

차디찬 밤이다


언제인가 새끼거미 쓸려나간 곳에 큰거미가 왔다

나는 가슴이 짜릿한다

나는 또 큰거미를 쓸어 문밖으로 버리며

찬 밖이라도 새끼 있는 데로 가라고 하며 서러워한다


이렇게 해서 아린 가슴이 싹기도 전이다

어데서 좁쌀알만한 알에서 가제 깨인 듯한 발이 채 서지도 못한 무척 작은 새끼거미가 이번엔 큰거미 없어진 곳으로 와서 아물거린다

나는 가슴이 메이는 듯하다

내 손에 오르기라도 하라고 나는 손을 내어미나 분명히 울고불고 할 이 작은 것은 나를 무서우이 달아나버리며 나를 서럽게 한다

나는 이 작은 것을 고히 보드러운 종이에 받어 또 문밖으로 버리며 이것의 엄마와 누나나 형이 가까이 이것의 걱정을 하며 있다가 쉬이 만나기나 했으면 좋으련만 하고 슬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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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는 세상이 아수라장이다. 인생이 바로 전쟁이다. 서로 죽이고 죽는, 먹이사슬이다. 이런 먹이사슬을 끊기 위해 나온 것이 인간의 도덕이다. 하지만 인간의 도덕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시대의 가치가 변하기 때문이다.

    이 시에서 백석은 자신의 처지와 같은 어린 생명의 연민을 본다. 내가 무심코 한 행동이 한 가족에게 엄청난 짓을 한 것이다. 그에게 가족은 그가 회복하고 싶어 하는 가치이다. 거미와 같이 작은 생명에도 가족이 있고, 그 가족들도 나와 같이 가족과 떨어져 보고 싶어 할 것이라는 생각, 그러면서 삶이라는 아수라장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 시는 백석의 시인됨을 보여준다. 그는 천상 시인이다. 지금은 더더욱 그가 그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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