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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지 않는 과거의 초상,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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흘러가지 않는 과거의 초상,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

바람분교장 2008. 8. 10. 17:14

  흘러가지 않는 과거의 肖像 

                                                 

                                                             written by 한승태 

 

1. 즐거웠던 그날이 올 수 있다면 아련히 떠오르는 과거로 돌아가서

       지금의 내 심정을 전해보련만 아무리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2. 잃어버린 그님을 찾을 수 있다면 까맣게 멀어져간 옛날로 돌아가서

      못다 한 사연들을 전해보련만 아쉬워 뉘우쳐도 과거는 흘러갔다.

- 정두수 작사 / 여운 노래

 

                                          


                                                      탁월한 이야기꾼,  김기덕 감독

 

"경고! 밤 7시 이후 이곳을 접근하는 자는 간첩으로 오인되어 사살될 수도 있습니다!" 이 영화의 사건을 암시하는 빨간 표지판이 등장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남들 노는 시간에 홀로 총검술과 기습 훈련에 열중하며 간첩을 잡겠다는 강 상병이 소개되고, 그와 부딪치는 부대 인근 마을의 양아치들이 소개된다.

 

왜 그런 욕망을 갖게 되었는지는 짐작만 할뿐이지만 강 상병이 하고자 하는 것은 간첩을 잡고자 하는 것이다.

 

그의 욕망은 집착을 넘어 광기로 보인다. 이는 강 상병이 위장크림을 바를 때 구체성을 띄는데, 영화 중반에서 부대원들이 강 상병으로 인해 혼란과 고통을 겪으면서 서서히 강 상병과 같이 위장크림을 바르게 되고, 강 상병의 광기를 닮아간다. 이런 강 상병의 집착은 남북 분단현실을 살아온 우리 사회에 아직 사라지지 않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과거의 우화를 보여주는 듯하다.

 

 

어느 날 밤 군사경계지역 안에서 사람의 실루엣이 강 상병의 야시경에 잡힌다. 간첩으로 판단한 강 상병은 망설임 없이 평소 연습대로 방아쇠를 당긴다. 하지만 강 상병이 죽인 것은 간첩이 아닌 술에 취해 정사를 벌이던 동네 양아치인 영길과 그의 애인 미영인 것을 알게 되고, 그간의 광기를 씻어내듯, 자신의 얼굴에 칠했던 위장크림을 씻어낸다.

 

하지만 이미 늦은 것이다. 그 동안 자신을 반공투사로 위장해왔던 강 상병의 자아는 죄책감으로 급속도로 붕괴된다. 자신이 진짜 민간인을 죽였다는 것과 그런 그에게 표창을 줌으로써, 보통인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상황을 겪게 된 강 상병은 정신적 분열을 겪는다.

 

 

그로인해 강 상병의 평소 욕망에 내적 균열이 생긴다. 그는 아마도 학창시절 제도권으로부터 받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그는 군대에서 실현하겠다는 신념을 가져왔던 듯하다. 이는 반공방첩이란 간판과 과거의 이미지로 가득한 정말 옛날 분위기의 술집에서 친구들과의 대화, 그리고 강 상병이 즐겨 부르는 노래<과거는 흘러갔다>를 통해 평소 강 상병의 성격과 의지를 알 수 있다. 아직도 과거 시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 강 상병이었던 것이다.

 

이 영화와 관계없이 내가 군대생활을 하던 때의 이야기다. 제대를 한 고참이 제대를 하고도 부대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그에게 사회는 낮선 곳이었고, 그를 받아줄 곳은 아무 곳도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집에 가서 힘겹게 사는 부모에게 기대기도 싫었다는 것이다. 그는 결국 직업으로 다시 군대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군대라는 거대한 조직사회가 어울리는 사람이었을지 모르겠다. 아직도 이런 거대 조직사회에 기대어 살아가는 삶도 얼마든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강 상병이 상징적으로 읽히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이런 유형의 인물일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 일 이후 강 상병은 근무를 잘 섰다는 공로로 표창을 받고 휴가를 나온다. 괴로워하던 그는 애인에게 민간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그러나 애인조차도 그런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 하고 떠나게 된다. 또한 애인 영길을 잃은 미영도 철책선 주위를 맴돌며 서서히 강 상병처럼 미쳐간다. 강 상병은 내적 균열 이후 그에게는 세상이 정말 변했고, 그것이 돌아갈 수 없는 과거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에게 노래처럼 행복했던 과거가 있었을까? 남북으로 나뉜 족구장에서 즐겁게 족구를 즐기면 놀던 시절, 그런 것이 행복했던 과거였을까.

 

 

포상휴가에서 복귀한 강 상병은 점점 난폭한 행동을 하다가 마침내 정신적인 장애로 의가사 제대를 하지만, 그 후에도 부대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후로도 계속 부대 안으로 들어오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제대를 하였지만 부대 안에서 누리던 계급을 계속 누리고자 한다. 이는 해병대를 제대한 사람들이 사회에서 하는 행태와도 연관이 있는 듯하다.

 

부대는 완전 계급의 사회인데, 이는 동시에 '사회적 계급'이 무의미한 집단임을 의미한다. 즉 사회에서의 계급은 부대 안에서 무효화된다. 그리고 새로운 2차적 계급이 부여된다. 그런데 그는 그를 보호하는 상병이라는 2차적인 계급마저 박탈당한다. 따라서 강 상병의 공격성은 이러한 정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일반인과 더 이상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까. 민간인을 사살하고 그의 애인을 미치게 만들었다는 죄책감이 그를 심리적으로 더욱 고립한다. 이는 사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고, 같은 군대 조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평소 골통이었기 때문에 민간인을 죽일 수 있었다고 부대원들은 생각하는 것이다.

 

 

미영과 영길이 해안선의 철책을 넘게 되는 순간부터 강 상병뿐 아니라 주변의 모든 인물들이 변화과정을 겪게 된다. 우선 강 상병의 변화과정을 통하여 단순한 개인의 충격과 고통을 넘어 공동체 내부로 고통은 확대 재생산 된다. 이는 강 상병이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이후, 부대 내부에 그 누구도 강 상병을 직접 목격하는 사람은 없지만 옷과 총기가 도난당하고, 사람이 죽어나가자 모두 강 상병을 범인으로 생각하고 보초경계를 서게 된다.

 

이때부터 김 상병과 조 일병으로 대표되는 부대원들은 지금까지 전우애를 나누었던 전우들이 아닌 서로를 의심하고 밀쳐내는 존재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인간 내의 본성이 점차 나타면서 절정에 이르러서는 눈에 보이지 않은 강 상병의 망령이 부대 내 인간 군상들의 추악한 본성을 표면 위로 들추어낸다.

 

수족관 속 미영의 이미지는 자궁의 상징으로 읽힐 수 있다.

 

자신의 잘못으로 영길의 죽음을 현장에서 목격한 미영도 강 상병과 같이 미쳐 가는데,  이후 미영은 군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하며 그들을 애인으로 생각하고, 결국에는 강 상병도 영길이라 부르며 안으려 한다. 이를 통해 미영은 모든 군인들을 영길과 마찬가지 피해자로 인식한 것은 아닐까? 이렇게 이런 피해와 고통은 우리 사회가 준 것이며, 따라서 그 고통은 누구 하나에게 전가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임을 이 영화는 보여준다.

 

 

부대원들은 조 일병이 죽은 이후, 강 상병이라고 믿는 어떤 실루엣을 향해 강 상병처럼 미친 듯이 총을 쏘아댄다. 그들도 이젠 강 상병처럼 가해자이며 피해자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얼굴 없는 시체의 얼굴은 각자의 얼굴이며, 그들의 증오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욱 공포를 자아낸다. 미친 미영을 돌아가며 성폭행함으로써 범죄에 대한 공동체 의식을 갖게 하듯,이제 그들은 모두 강 상병과 같이 공범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를 통해 개인적인 일이 공동체의 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시퀀스는 서울의 대로에서 강 상병의 총검술을 보여준다. 지나던 사람들은 강 상병을 신기한 듯, 재미있어 하며 쳐다보지만, 그 누구도 강 상병과의 어떤 관계도 없지만 강 상병의 총검에 사람이 찔리는 것이다. 이제 누구라도 어처구니없는 과거의 망령에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는 무서운 전언을 전한다. 아직도 과거가 현실인 이 사회에서 말이다. 이 영화에서 강 상병의 몫이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마지막 메시지는 정말 우리를 전율하게 만든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는 늘 우리를 불편하게 만든다. 그것은 영화가 단순히 즐기는 오락으로서의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의 영화들은 소외계층과 사회적 약자와 악자, 그리고 사회의 부조리한 모순을 드러내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기 때문이다.

 

영화 속의 해안선은 인간 운명에 관한 은유로 보인다. 이곳에서 등장하는 해안선은 두 세계의 접점이다. 두 세계가 서로 으르렁대며 잠식해가는 접점, 삶과 죽음의 접점이기도 하고, 분단 이데올르기의 접점이기도 하고 인간 존엄성의 접점이기도 하다. 따라서 현재의 우리 사회의 축소판으로써 군대라는 세계가 설정된다.

 

이 영화는 현재에도 유효한 우리 사회의 우화처럼 읽힌다.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한 것은 무엇인가? 아마도 우리가 아직도 갖고 있는 일그러진 자화상 때문이 아니었을까 한다. 영화의 주제곡처럼 "과거는 흘러갔다" 우리에게 그러한 과거가 있고, 그런 과거는 흘러갔지만 우리의 상황은 얼마만큼 바뀌었을까, 정말 과거는 흘러가서 과거일 뿐일까?

 

수구골통들이 애기하는 과거, 그런 행복했던 과거는 아직도 정치판에서, 군대에서, 학교 현장에서 존재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그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믿기지 않는 사실로서 우리의 자화상이 보이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