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처음 맛본 자유와 해방, <델마와 루이스> 본문
리들리 스콧 감독의 <델마와 루이스>
처음 맛본 자유와 해방
Written by 한승태
자유를 위하여/비상하여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김수영,<푸른 하늘을>중에서
이 영화의 처음은 매우 짧지만 효과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면은 광활한 들판과 쭉 뻗은 도로와 드높은 하늘을 보여 주어 다음 장면에서 두 주인공의 답답한 현실과 대조시킨다. 가정주부 델마는 덜렁대는 성격에 새(鳥)가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마초적이면서 유아적인 남편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친구 루이스와 여행을 하고 싶어 한다. 그녀가 하고자 하는 일은 남편의 그늘에서 벗어나 잠깐이지만 루이스처럼 자신의 삶을 혼자 결정하며 자유롭게 즐기길 원한다. 그의 친구 루이스는 식당의 종업원으로 꼼꼼하고 자상하다. 하지만 식탁들 사이에서 반복되는 일상이 지겨워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어 한다. 결국 델마는 남편에게 말도 안하고 친구인 루이스와 과감하게 의기투합하여 주말에 아는 사람의 별장을 빌려 함께 지내기로 하고 여행을 떠난다.
델마는 며칠을 가는 여행에 정말 초보 여행자처럼 온갖 짐을 다 싼다. 여행 중에 일어날 모든 일에 대비하기 위해 심지어 한 번도 쏘아본 적이 없는 권총까지 준비한다. 이에 비해 간단한 짐만 꾸린 루이스는 대조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여행 중 델마는 못 피우는 담배지만 입에 물고 루이스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휴게실에 차를 세웠을 때, 평범한 두 여인들의 여행길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의 길로 빠진다. 남편으로부터의 해방감에 들뜬 델마는 술을 마시고 모르는 남자와 춤을 추나, 남자는 곧 치한으로 변해 주차장에서 폭력을 휘두르며 강간하려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루이스가 권총으로 그를 제지하고 델마를 구해낸다. 처음엔 위협만 하려했으나 남자가 성적인 모욕을 가하자 루이스는 분노하여 총을 쏴 그를 살해한다. 이로부터 세상의 모든 마초적인 남자들은 이들과 적대관계를 이룬다.
이제부터 이들의 여행길은 도주로 바뀌고 두 사람은 극한 상황에 빠져든다. 더구나 델마의 친절과 남자에 대한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루이스의 돈을 제이디, 라는 건달 청년에게 도둑을 당한다. 이후 낙담하는 루이스를 대신해 델마의 변신이 시도된다. 델마는 이제 두 사람의 도주를 위해 제이디에게 들은 대로 흉내 내어 상점을 터는 강도가 된다.
이때까지 영화를 이끌어왔던 루이스와 수동적으로 따라만 왔던 델마가 서로 그 역할을 바꾸게 된다.
델마 : 나, 미쳤었나 봐?
루이스 : 뭔 소리야, 넌 원래 그랬어. 이번에야 처음으로 제 자신을 드러낼 수 있었던 거야.
드디어 델마는 영화 초반에 말한 대로 강인한 루이스의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녀는 이제 루이스와 함께 경찰의 추적을 피해 멕시코로 가고자 한다. 드디어 델마가 그 동안 남편에 의해 억눌려왔던 드넓은 초원의 야성을 찾아간다. 드디어 델마는 상황에 의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기 시작한다. 자유를 만끽한 델마는 더 이상 남편의 굴레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돌아갈 곳이 없다는 걸 알게 된다. 이렇게 두 인물이 변화해 가는 과정이 영화의 중반을 이룬다.
또한 광활한 사막, 붉은 절벽, 황무지의 흙먼지 등 영화의 미장센은 주인공 두 인물의 심리적 변화과정을 따라 변화하고 배치되어 고립되어가는 주인공과 처음 맛본 자유와 해방감을 너무나도 세심하게 보여준다.
루이스는 영화에 조금씩 드러난 정보를 통해 보면 옛날 텍사스에서 델마가 당했던 비슷한 일을 당했고, 그래서 총을 쏘았으나 아무도 믿어주질 않은 것으로 보인다. 두 사람은 이제 강도짓을 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들은 행동은 거침없이 경찰을 위협하여 감금하고, 사건은 갈수록 눈덩이처럼 부풀어진다. 이 두 여자의 사정을 알게 된 형사 할만이 그녀들을 도와주기 위해 노력한다.
유조차 트레일러 운전사가 끊임없이 성적 희롱으로 치근대자, 차를 세우고 사과하라고 하지만 그녀들에게 험한 욕을 해대기 시작한다. 그때 델마가 총을 꺼내 트레일러의 차바퀴를 쏴 버린다. 이로서 델마가 남자들로부터 받아온 성적 억압을 날려버리게 되는 것이다. 델마와 루이스가 경찰의 추적을 피해 탈출하는 여정 속에 만나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거의 몰상식한 마초적 인물들로 등장하는데, 무심한 남편, 자신의 감정도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남자 친구, 규정에만 얽매인 경찰, 그리고 거친 육담의 트럭 운전수들은 현실의 남성성을 대표하는 인물들로 그려진다. 이들을 통해 여성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상처받기 쉽다는 것을 보여준다. 동시에 우리 인생이 아주 사소한 것 때문에 전혀 다른 상황으로 변질되어가는 아이러니를 잘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클라이막스에서 이들의 위치가 파악되고, 경찰의 추격 끝에 그랜드 캐넌의 벼랑 끝에 몰리게 된 두 여인. 구름 한 점 없는 새파란 하늘과 끝없는 황토빛 광야, 그리고 기괴한 형상의 돌산, 대지들 사이로 한없이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따라 달려가는 델마와 루이스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해방감과 자유로운 실존감을 느낀다. 이를 통해 두 눈을 감고 바람의 속삭임을 들으면서 처음으로 둘은 자유와 그들에게 내재된 자아를 발견한다.
이제 델마가 루이스에게 그냥 앞으로만 달리자고 소리친다. 서로의 눈빛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랜드 캐넌의 벼랑 끝을 질주한다. 그랜드 개년 절벽을 향해 차를 몰아 돌진하여 그렇게 자유로운 여정의 마침표를 찍는다. 결국은 억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싸워야하고 그래서 얻는 피의 자유는 소중한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움직이고 살아 숨 쉬고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이다.
김수영은 그의 시에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배어있다고 노래한다. 왜 인간의 자유는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것일까? 피의 대가를 요구하는 사회구조는 대체 어떻게 때려 부셔야 할까? 내 안의 꿈틀거리는 마초는 어떻게 몰아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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