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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성 감독의 <파이란>에 대하여

바람분교장 2008. 7. 25. 18:40

 

 송해성 감독의 <파이란>

인간쓰레기 이강재와 인간세탁기 파이란

  

                                                                                                              한 승 태

 

 

첫사랑의 앵도화 울밑으로 시들어지고

먼 산허리에 기우는 봄빛,

엉터리로 불러보는 아득한 그대,

막차의 불빛으로 자옥하게 피어난 그대.

 

이 봄빛 다하면 저승꽃만 착실히 피리.

   

- 박정만의 <아득한 그대> 전문


 

이 영화는 <철도원>을 쓴 아사다 지로의 단편 중 하나를 각색한 작품이다. 원작과는 다른 제목 <파이란>은 등장인물의 이름으로 송해성 감독의 작품이다.

파이란은 고아로 중국에서 친척을 찾아 한국에 입국하지만 친척의 이민으로 일자리를 찾게 되고 이를 위해 얼굴도 모르는 남자 이강재와 위장 결혼을 한다. 그런 파이란과 위장 결혼한 3류 양아치 이강재, 그는 파이란의 얼굴은 물론 자신이 결혼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물론 처음 그에게는 그녀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없었다.

영화의 처음은 이강재의 쓰레기 같은 삶의 모습에 맞춰져있다. 그가 얼마나 쓰레기 같은 인물인지를 보여준다. 그는 미성년자에게 불법섹스비디오를 팔다 파렴치범으로 감방에 갔다 나온 첫날부터 오락실에서 삥을 뜯고 애들에게 시비를 거는 건달이지만 깡패들의 조직세계에서 결코 인정받는 인물이 아니다. 동기는 조직의 보스가 되었지만, 그 보스의 말대로 그는 마음이 여리고 겁이 많아 조직의 후배들에게도 대접받지 못하고 조롱을 받는 천덕꾸러기다. 하지만 그의 허세는 ‘남자답게 사는 것’이 목표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후배 경수(공형진)와 함께 사는 방안에는 강재의 글씨로 보이는 ‘남자답게 산다!’ 라는 액자가 있다.

그가 후배 경수와 함께 기거하는 아파트의 자취방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한다. 이는 강재의 삶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데, 불법 비디오테이프에, 잡지의 여자 나체사진, 싱크대에 오줌을 갈기는 생활, 후배의 비상금까지 몰래 손을 대는 그야말로 인간쓰레기가 강재의 삶이다. 물론 조직의 보스 용식이나 강재의 조직 후배들도 3류 쓰레기이기는 마찬가지다. 강재가 후배들과 싸우다 불려가 그들이 싫어하는 옛날이야기를 하다 실컷 두들겨 맞는 용식의 사무실에는 마음을 맑고 깨끗이 함으로써 모든 일에 통달하게 된다는 ‘心淸事達’이라는 액자가 있다. 예전에 이발소 그림처럼 우리들 가훈으로 많이 걸리던 글귀이다. 이것은 강재의 자취방 액자 ‘남자답게 산다’처럼 그들의 세계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밑바닥을 전전하는 삼류 건달들이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이상 같은 것이기도 하다.

강재가 감방에서 나온 날, 후배에게 비디오방을 빼앗기고 자취방으로 들어갈 때, 강재의 장난에 응수하는 ‘좆을 까시오, 좆을 까’하는 경수의 민요조 노래는 이들이 더 이상 망가질래야 망가질 수 없는 인간 말종이면서도 아이러니하게 이들의 행동에서 강재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  

 

영화는 2장에 들어서 이러한 인간쓰레기 강재의 내면세계에 균열을 일으키는데, 그 역할이 바로 파이란의 몫이다. 파이란은 우여곡절 끝에 강재와 위장결혼으로 한국 땅에 살 수 있게 된다. 그녀의 삶도 강재처럼 아이러니로 점철되는데,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 친척의 이민도 그렇고, 속초로 팔려간 노래방에서 일부러 피를 토하는 것도 그녀의 삶을 아이러니하게 보여준다.

결국 그녀는 간성의 세탁소에서 세탁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그녀는 정체성을 드러낸다. 세탁소의 주인의 말대로 ‘그녀는 인간세탁기였던 것이다.’ 그녀가 세탁하게 되는 것은 바로 쓰레기 같은 삶을 사는 강재인데, 낯선 땅에서 자신과 결혼해주었다는 것과 버릴 빨간 목도리만으로도 그 따뜻한 마음을 헤아리고 피를 토하며 죽어가면서도 짝사랑을 키워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강재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에서 계속되는 신원확인과 경수의 거짓말에 자신은 강재에게 소속되어 있으며, 그로인해 그리움을 키우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자기 칫솔을 사며, 어딘가에 있을 남편 강재의 칫솔까지 사게 되는 파이란, 그녀는 정말 강재가 자신을 사랑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고 그의 호의에 감사하게 된다. 

그 동안 강재는 용식의 제안으로 귀향할 배 한척에 그의 살인죄를 뒤집어쓰는데, 갑자기 들어 닥친 경찰에게 부인 파이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리고 법적 남편으로 법적 아내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긴 기차 터널을 지나 마음이 맑고 깨끗했던, 처음 남자답게 살겠다고 다짐하던, 모든 일이 다 될 것만 같던 그 세계로 여행을 하면서, 파이란이 남긴 유서 같은 편지를 읽게 되고, 아무짝에 쓸모없다고 생각하던 쓰레기 같은 자신을 사랑했다는 여인의 존재에 목이 메어온다.

드디어 쓰레기 삶을 살았던 강재의 내적균열이 생기고 카타르시스와 같은 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다. 그는 파이란의 존재로 인해 삼류들의 쓰레기 같은 삶에서 드디어 정말 남자답게 사는 심청사달의 세계로 구원을 받는다.

 

장소적으로 볼 때도 인천과 강원도의 바닷가를 대립적인 공간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인천에 올라가 보스에게 그의 제안과 조직의 생활을 청산하고 귀향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의 운명은 아이러니한 세계에 아직 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쓰레기 같은 삶을 살며 변변찮은 삼류 깡패 강재에게도 삶의 희망을 갖게 해주지만, 광포한 운명은 이를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인생의 진한 아픔과 감동을 선사한다. 

따라서 영화는 인간쓰레기의 삶을 사는 이강재가 어떻게 남자답게 가 아닌 인간답게 사는지, 그의 삼류 인생의 운명이 어떤지에 초점을 맞춘다. 즉 적대자와의 외적갈등을 다루는 것이 아닌 자신의 운명과 내적갈등을 다루는데, 그러한 복잡 미묘한 연기를 이강재 역인 최민식은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