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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구름을 사랑한 이방인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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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구름을 사랑한 이방인

바람분교장 2008. 7. 26. 14:44
 

 

 

 

이누도 잇신의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구름을 사랑한 이방인, 人魚 ‘조제’와 츠네오

 

                                                                한 승 태

 

언젠가 그대는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야, 라고 베르나르가가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그대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우리는 또 다시 고독하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라지는 건 없다. 거기에는 또 다시 흘러가버린 1년이란 세월이 있을 뿐인 것이다. 그래요, 알고 있어요. 라고 조제는 말했다.

-프랑스와 사강의 <한 달 후 일 년 후> 중에서

 

낡은 나조반에 흰밥도 가재미도 나도 나와 앉어서

 쓸쓸한 저녁을 맞는다

우리들은 맑은 물밑 해정한 모래톱에서 하구 긴 날을 모래알만 헤이며 잔뼈가 굵은 탓이다 /...... /

우리들은 가난해도 서럽지 않다

우리들은 외로워할 까닭도 없다

그리고 누구 하나 부럽지도 않다

흰밥과 가재미와 나는

우리들은 같이 있으면

세상 같은 건 밖에 나도 좋을 것 같다 

-백석의 <膳友辭> 중에서

     


 

평범한 대학생 츠네오와 다리가 불편한 소녀 조제가 만나 사랑에 빠지고 시간이 흘러 헤어진다는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단순한 플롯이지만 극중 조제의 디테일한 매력으로 이 이야기는 풍성해진다.  

 

영화의 1장에서 츠네오는 평범한 대학생으로 그럭저럭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여 평범하게 살고자한다. 그는 심야의 마작 게임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최근 그곳의 가장 큰 화제는 밤마다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할머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츠네오는 언덕길을 달려 내려오는 유모차와 마주치는데, 놀랍게도 그 안에는 식칼을 든 소녀가 있었다. 그것이 츠네오와 조제의 첫 만남이다. 할머니는 다리가 장애인 손녀(진짜 손녀는 아니다) 조제를 유모차로 산책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루미코이지만 프랑소와즈 사강의 소설을 좋아하여 조제라고 불리길 원한다. 소설의 주인공 조제는 영화 속 주인공 루미코가 이후 겪게 될 운명의 모습이기도 하다. 소설의 소개를 통해 조제가 츠네오를 떠나보낼 것이라는 것을 1장에서 복선으로 깔아놓는다. 음식솜씨가 좋은 그녀는 방안의 구석에서 할머니가 주워온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행복이다. 이는 세상에 대한 정보와 소통의 창구이기도 하다.

 

조제의 또 하나의 행복은 할머니가 시켜주는 새벽의 유모차 산책이다. 이런 산책을 마작방의 사람들이 호기심에 덮쳤던 것이다. 첫 만남의 도움으로 조제의 계란말이를 먹게 된 츠네오는 왠지 그런 조제에게 마음이 끌린다. 그런데 예쁜 여자친구도 있지만 웬일인지 자꾸 별나고 특별해 보이는 조제에게 끌리는 츠네오는 자꾸 조제를 찾아가게 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게 가까워진다.

 

츠네오는 조제를 위해 유모차에 스케이트보드를 붙여 개조한다. 이 유모차는 츠네오와 조제의 사랑을 연결하는 장치로 쓰이는데, 처음 조제를 만나게 한 것도 이 유모차였고, 츠네오가 조제에게 처음으로 낮의 세계를 보여준 것도 이 유모차 덕분이다. 할머니의 말처럼 조제는 고장 난 몸이다. 이후 츠네오는 유모차가 고장 나면 계속 수리를 한다. 하지만 나중에 츠네오가 조제와 동거를 하는 어느 시점부터 더 이상 유모차를 수리하지 않는다. 이는 이후 츠네오가 조제를 떠나게 되는 것을 암시한다. 또 츠네오를 떠나보낸 조제가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외출할 수 있는 전동 휠체어를 타고 다님으로써,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던 조제가 사랑의 아픔을 극복하며 스스로의 삶을 꾸려나간다는 걸 유모차와 전동휠체어를 통해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츠네오와 같이 있을 때부터 사자고 하였지만 거부했던 전동 휠체어를 조제가 탐으로써 조제의 변화와 성장을 보여준다.   

 

어쨌든 조제는 할머니가 하지 말라는 낮 산책을 츠네오 덕분에 하게 된다. 그러면서 보게 되는 낮의 아름다운 햇살과 구름, 나무들, 꽃이며 사람들, 그녀의 눈에는 모든 것이 새롭고 아름답다. 그녀가 그토록 보고 싶어 하는 낮의 세계였던 것이다. 사강의 희곡 <신기한 구름>에 등장하는 보들레르의 시<이방인>의 구절처럼 그녀는 이 세상에서 구름을 사랑하는 이방인인 것이다. 이는 평소 츠네오가 느끼지 못했던 낯선 순수함이었다. 따라서 그녀의 눈은 모든 사물들을 사진 찍듯 마음속에 담아두고, 츠네오도 그런 조제의 낯선 순수함을 담아둔다. 그것은 나중 츠네오의 추억이 되기도 하고 조제의 추억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로 인해 할머니로부터 츠네오의 출입이 금지된다. 그러나 츠네오는 여자친구 카나에의 도움으로 시청의 복지과에 조제를 위해 장애인 편의시설 하게 된다. 하지만 카나에의 철없는 말 한마디로 조제는 상처를 입고, 쓸쓸히 츠네오를 떠나보낸다.

 

조제를 떠난 츠네오는 왠지 가슴 한쪽이 허전하다. 남들이 부러워할 정도의 퀸카가 카나에와 섹스를 해도, 어떤 대화를 해도 그는 행복하지 않다. 가까스로 잊었던 조제를 어느 날 동창회에서 만난 후배 카나이 하루키 때문에 떠올리고, 그를 두들겨 패는 장면은 츠네오가 그 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또 얼마나 간신히 잊고 있었는지 잘 보여준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제를 다시 찾은 츠네오는 조제와 동거를 하게 된다. 그러자 츠네오와 사귀던 카나에가 조제를 찾아와 못 쓰는 다리를 무기로 츠네오의 동정심을 자극했다며 모욕을 주지만, 조제는 그런 그녀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다. 오히려 츠네오의 여자친구였던 카나에는 이후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삶을 살게 된다.

 

그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동물들이 있다. 호랑이는 조제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겠다던 세상에서 제일 무서워하던 동물이다. 이는 세상의 온갖 두려움으로부터 견딜 수 있는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을 확인하는 상징이다. 동물원의 호랑이를 찾은 조제는 츠네오에게 호랑이를 보고 감사하라고 당당하게 요구한다. 그런 당당함과 순수함이 바로 츠네오가 사랑했던 조제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대한 소통 통로였던 조제의 책은 츠네오의 짐이 집에 들어오면서 다시 쓰레기로 변하여 문밖에 내놓인다. 사랑은 이렇게 조제가 좋아하던 일정부분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동거를 하게 된 츠네오는 부모에게 조제를 어떻게 소개할까를 고민한다. 그리고 집안의 제사 때 소개하려고 하지만 결국은 조제와의 이별 여행이 되고 만다. 조제는 수족관에서 츠네오의 고민을 눈치 채고 바다여행을 하자고 조른다. 이들은 바다를 보고 물고기여관(물고기저택)에서 묵게 된다. 방은 벌어진 조개침대와 온통 방안을 돌아다니는 물고기의 실루엣 조명으로 만들어낸다. 이 물고기들은 조제가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자신을 투영해낸 존재로, 각각 조제에게 다가온 사랑과 조제가 처한 현실을 상징한다.

 

츠네오와 가장 야한 섹스를 하고 난 조제가 말한다.

 

“눈 감아봐, 뭐가 보여?”

“아무것도, 깜깜해!”

“그곳이 내가 있던 곳이야.”

“어디가?”

“깊고 깊은 바다 밑바닥, 난 그곳에서 헤엄쳐 올라온 거야.”

“뭐 때문에?”

“자기랑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를 하려고.”

“그렇구나, 조제가 해저에서 살고 있었구나!”

“그곳은 빛도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아, 너무도 고요해.”

“외롭겠다.”

“그래도 외롭지는 않아, 애초부터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단지 아주 천천히 시간이 흘러갈 뿐이지. 난 두 번 다시 그곳에 돌아갈 수 없겠지. 언젠가 자기가 없어지게 되면 미아가 된 조개껍데기처럼 혼자서 바다 밑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겠지. 하지만 그것도 괜찮아.”

 

그런 그녀의 말을 들으며 츠네오는 잠들어간다.

 

그러고 6개월 뒤 어느 날 아침, 출근을 하듯 츠네오는 조제를 떠나고, 조제는 그런 츠네오에게 SM킹이라는 가학성 성인잡지를 마지막 선물로 준다. 조제가 츠네오에게 유일하게 줄 수 있었던 것이 직접 요리한 음식과 세상에서 가장 야한 섹스였던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여기서 자식을 떠나 보네는 어머니의 모습을, 조제를 통해 느끼게도 된다는 것이다. 그녀는 고아원에서 ‘엄마’라는 말 때문에 가출한 코지유우에게 엄마를 자청한다. 스스럼없이 엄마를 자처하는 조제에게서 어쩌면 남자들은 심리적 어머니를 느낄런지도 모르겠다.

 

조제를 떠난 츠네오는 자신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한 카나에에게 돌아간다. 그녀도 책임져야할 자신의 삶의 일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카나에가 뭐 따뜻한 음식이라도 먹자고 했을 때,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주인공이 마들렌느 과자를 홍차에 적셔 먹다가, 그 향과 촉각에 불현듯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기억을 떠올리며 과거로 빨려 들어가듯, 미각에서 떠올리게 된 따듯한 조제를 생각하고 흐느끼게 된다. 조제는 ‘시간’이 갖는 파괴력 앞에 츠네오와의 사랑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인생은 결국 ‘잃어버린 시간’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들의 사랑을 서서히 좀먹고 파괴해가는 ‘시간’의 힘에 맞서 그녀가 할 수 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조제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판타지를 만들어내지만, 그 환상은 곧 깨져버리고 현실을 드러낸다. 그 현실 속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가장 큰 행복과 가장 큰 절망을 발견하지만, 그녀는 츠네오를 떠나보낸다. 조제는 쓸쓸하지만 여전히 요리를 하고, 전동 휠체어를 타고 세상나들이를 한다.   


가거라 슬픔이여

어서 오라 슬픔이여

천장의 무늬에도 너는 새겨져있다.

내 사랑하는 눈에도 너는 새겨져 있다.

내 비참함과 너는 어딘가 다르다.

왜냐하면 가장 가난한 입술마저도

미소 속에 너를 나타내므로

어서 오라 슬픔이여

욕정을 부추기는 육체와 육체의 사랑

사랑의 강인한 힘

몸뚱이가 없는 괴물마냥

유혹이 용솟음친다.

희망이 배신당한 얼굴.

슬픔이여. 아름다운 얼굴이여!


―폴 엘뤼아르 <가거라 슬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