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Living next door to Alice 본문
Living next door to Alice
한승태
은사시나무 이파리가 바람을 다스리고
사금파리가 노래하는 아침이다
알궁둥이처럼 뽀얀 봉당에 앉아
스모키를 들었다 아무 뜻도 모르고
1970년대를 들었다 아부지가
옥수수증산왕으로 받은 쏘니카세트와
덤으로 딸려 온 스모키 테이프
달빛 아래 연인의 마음도
어느 먼 이국 땅 옆집 살던 엘리스도
그것이 왜 쏘니고 스모키인지도 모른 채
느닷없이 이민 간 네가 생각나고 마냥
봉당에 앉아 붉은 강낭콩이나 까며
아침이슬을 말렸다 씨르래기와 참매미는
솔숲과 측백나무 울타리에 창문을 열고
하늘은 느릿느릿 내려와 시시때때로
뭔 뜻인지는 몰라도 뱃속 가득
먼 나라의 햇살을 품기도 했다
하루 종일 바람에 몸을 그을리며
너의 새끼손가락과 강낭콩 껍질로
방석이나 엮으며 점점 느슨해지는
네 얼굴을 되새김질하곤 했다
현대문학 2006년 발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