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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한밤에 쓰는 각서 / 이언빈

바람분교장 2025. 8. 20. 10:32

한밤에 쓰는 각서

 

 

그대 아는가

 

세상에 패배하고 

돌아와

화분에 고요히 물 주는 일

 

뿌리까지 내려가

한 됫박 위안으로 

가만히

발가락 움켜쥐는 일

 

오늘 하루도 수고한

내 발잔등

찬물 한 바가지로

함께 출렁이며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서

온몸 끌어안고

뜨겁게 연대하는 일

 

주머니 속

아직 눈 뜨지 않은 시간이 있다

굳게 믿으며

 

주먹 불끈

다시 발가락에 힘 세우는 일

 

아직도 

그대, 

한 모금 주유가 필요한가

 

 

이언빈 / <시로 여는 세상>, 25년 여름호 중에서 


다시 발가락에 힘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발가락은 뿌리라 믿으며 지탱하는 힘이라 믿으며 발가락을 세우고 있다. 다시 걷기 위해 일어서고 있다. 세상에 실패하는 일은 무엇인가. 끝없이 발가락을 곧추 세우는 일, 그게 인간의 운명이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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