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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빵이야기 / 진동영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풀빵이야기 / 진동영

바람분교장 2025. 8. 11. 10:16

풀빵 이야기

 

풀빵 다섯 개 천 원 주문을 하면 얼굴이 긴 노인은 손가락으로 귀를 여러 번 가리키며 일없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양은 주전자 주둥이에서 묽은 반죽이 빵틀 위로 떨어지고 굽은 꼬챙이로 뜬 팥소가 올라갔다. 빵틀 안에서 풀빵이 몇 번 뒤집히고 접힌 종이봉투가 벌어지는 동안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빵틀 가에 둥그렇게 가까이 줄지어 선 풀빵들 노르스름한 겉면 아래 팥소가 희미하게 검붉었다. 풀빵 봉투를 받아 들고 뒤돌아서면 빵틀이 제자리를 도는 소리가 귓가에 잠시 맴돌았다. 누렇게 색이 바랜 비닐 창 너머로 노인은 이따금 붉게 상기된 얼굴로 반죽을 치대고 수레를 휘감은 천막 포장이 바람에 부풀었다 다시 가라앉았다. 등나무근린공원 입구를 지나며 풀빵 풀빵하고 속으로만 말하면 자꾸 헛배가 불러오는 것 같았다. 그새 눅눅해진 종이봉투를 열면 원래부터 한 덩어리였던 것처럼 풀빵들이 합죽하게 입술을 붙이고 있었다.

 

당현천 화단에 하얀 수레국화 한 무더기가 피어 있다.

 

진동영 시집 <투명한 뼈> 중에서 


진동영의 시집의 시들은 묘사로 견고하다. 정밀한 묘사로 이루어진 장면은 은유로도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단백한 풍경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시가 된다. 포장수레에서 풀빵을 굽는 노인은 아무래도 귀가 어두운 이 같다. 말없이 풀빵만 굽는다. 구워진 풀빵에 대한 묘사와 포장마차에 대한 묘사, 천막을 바람이 부풀었다 가라앉는 포장수레에서 굽는 풀빵도 마찬가지다. 먹어도 금세 꺼지는 풀빵은 아무래도 우리네 삶의 허기다. 바람만 가득한 각자였던 삶은 서로서로 위로가 된다. 풍경 하나가 이렇게 시가 된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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