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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소밭 가에서 / 김수영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채소밭 가에서 / 김수영

바람분교장 2023. 2. 12. 16:37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강바람은 소리도 고웁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달리아가 움직이지 않게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무성하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돌아오는 채소밭 가에서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


<1957>

 

김수영 시전집 중에서 


이 시는 주술적 성격이 있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를 반복하면서 '더' 그 의미를 점층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부탁의 형식이면서 명령하고 있다. 기운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일수록 그 의미를 강화되고 절박해진다. 기운을 주라는 반복 외에 강바람, 달리아, 채소밭, 바람이 등장한다. 주어야 하는 주체와 그 기운을 받는 객체는 무엇인가? '바람이 너를 마시기 전에'라는 마지막 구절로 보아 바람에 마르는 아침 이슬에게 부탁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화자는 아침 일찍 강이 보이는 채소밭에 나와 돌아보는데 밭에는 달리아도 심었다. 나선 김에 바람이 고운 강까지 나갔다고 돌아올 수도 있겠다. 화자가 준 조로의 물방울이나 이슬이 달리아에게 꽃이 큰 달리아가 채소에게 무성한 채소가 바람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운을 주어야 한다는 것으로 보인다. 

어떤 이는 채소는 일상적인 것인데 반해 채소밭에 낯선 달리아는 시인의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니 기운을 받는 주체는 달리아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도식적으로 보면 재미가 없어진다.  '기운을 주라 더 기운을 주라'는 간절한 주문은 생명체가 서로에게 더 기운을 주길 원한 것이다. 그래서 시적 화자도 기운을 받길 원한 것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기운이 되어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기를 바란 것이 아닐까 한다. (한승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