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동동이 외1편 /박용하 본문
동동이
마음먹고 흰 강아지를 데려왔다
동동이라고 이름을 지었다
이름답게 기운이 넘쳤다
이 녀석이 오기 전
화와 분노가 나를 갈아 대고 있었다
가슴엔 불구덩이가 살았다
녀석과 살기 시작했을 뿐인데
나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 개가 나를 구했다면 믿겠는가
박용하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 중에서
나는 아직 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는 사람이다. 아직 들일 수 없는 사람이다. 딸이 셋이나 있고 어린 내가 있기 때문이다.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고 친구가 되고 사랑이 되는 것이 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를 뿐이다. 누구에게는 나무가 그렇고 누구에게는 꽃이 그렇다. 모든 생명체가 그렇다. 그래서 같이 살기도 하는 거다. 시인은 동동이가 사람이 아니어서 자신을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변화시켰다고 한다. (한승태)
얼굴
제 어머니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제 어머니는
필리핀 사람입니다
제 어머니는
캄보디아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는
한국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는
파키스탄 사람입니다
저는 제 얼굴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박용하 동시집 <여기서부터 있는 아름다움> 중에서
전 지구적인 나라가 되고 있다. 어떤 나라는 인구가 줄고 어떤 나라는 늘고 있다. 그러니 이동은 자연스러운 거다. 그럼에도 지구촌이 모인 얼굴을 두려워하는 쫄보가 있다. 업신여기는 사람이 있다. 나와 외모가 피부가 다르다는 이유다. 물론 이것도 우리만의 문제라기보다 전 지구적인 문제다. 우리나라에선 오천 년 단일민족이라는 거짓된 이데올로기가 만들어낸 참극이다. 우린 단일민족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역사에 조그만 관심 가져도 알 수 있다.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이 정말 위대하다면 모두의 얼굴을 가져야 한다. 제 얼굴이 없으면 좋겠다는 이는 모두의 얼굴이면서 단 하나의 얼굴을 가졌다. 참혹하고 어두운 마음이 끝내 아프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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