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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이상국 / 개싸움 외 1

바람분교장 2021. 7. 26. 13:52

개싸움

 

이상국

 

 

나는 감춘 것도 별로 없고 그냥 사는 게 일인 사람인데

동네 철대문집 개는 내 발소리만 들어도 짖는다.

 

산책 갈 때도 그 집 대문에서 되도록 멀리 근신하며 지난가지만 매번 이제 됐다 싶은 지점에서 그가 담벼락을 무너뜨릴 듯 짖어대기 시작하면 뭔가 또 들킨 것처럼 가슴이 덜컹한다.

 

나는 쓰레기도 철저히 가려서 내다 버리고 적십자회비도 제때 내며 법대로 사는 사람이지만 아무래도 그는 내 속의 누군가를 아는 것 같다.

 

그깟 개를 상대로 분개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겁을 먹은 건 아니다. 그래도 그것이 개든 무엇이든 내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언짢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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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을 꼭 들킨 거 같은 기분은 아무래도 좀 조심스럽다. 우리가 조상의 위패를 모시고, 안방에는 어르신들의 사진을 거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게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거, 아니 내 속을 들여다본다는 것도 생각하면 참 서늘한 일이다. 내 안의 망난이가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도 그 때문인지 모른다. 철대문집 개와 늘 싸우는 것 같아도 섬기는 건지 모른다.  더더욱 요즘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며 사는 걸 당연하다 여기지만 내 안의 망난이를 잠재우는 건 우리 이웃들인지 모른다. 참 서늘한 시다. (한승태)

 


누군가 있는 것 같다

 

 

산에 가 돌을 모아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나를 모르고 나도

돌을 알지 못했으므로

그게 돌에다 한 것인지

내가 나에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탑을 쌓은 나와

탑을 쌓기 전의 내가 다르듯

탑이 된 돌들도 이미

그전의 돌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서로 남은 아니었다.

 

그곳이 산천이거나 떠도는 허공이거나

우리가 무엇으로든

치성을 드리고 적공을 하면

짐승들도 함부로 하지 않고

비바람도 어려워하는 것 같았는데

 

산에 가 돌로 탑을 쌓고 서원을 했다.

돌도 돌만은 아니었고

나도 마만은 아니었다.

아무래도 그와 나 사이에 누군가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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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화전민 출신이라 그런지.  큰 산이든 작은 산이든 몸을 조신하게 된다. 마을 당이나 돌탑에 소원을 빌어본 사람은 안다. 나를 지켜보는 거 같기 때문이다. 그런데 돌을 쌓고 마음을 붙인 탑이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돌과 나 사이에 천지간에 나를 지켜보는 누군가 있다. 사람들은 산신이라고도 하고 여우나 호랑이라도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든 무슨 상관이랴, 누군가 지켜본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지만 그것이 나를 지켜주는 것이다. (한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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