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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진의 <파친코>와 정이삭의 <미나리>, 그리고 남은 자들의 이민 본문
이민진 <파친코>를 읽고 정이삭 감독의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파친코>의 첫 문장은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괜찮아’였다. 여기서 말하는 역사는 일제의 식민지와 이후 한국전쟁으로 인해 조국을 떠나야했던 우리 조부모 세대의 역사를 말한다. 그러니 이 소설의 탄생지는 식민지 조선이다. 부산의 작은 섬, 영도에서 시작된 여정은 일본 오사카로 도쿄로 요코하마로 이어져 일본 내 자이니치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선자를 중심으로 여자의 삶은 고생길이라는 어머니의 넋두리가 실현된다. 여자들에게 행복은 잠시 지나가는 바람이다. 행복도 고생도 남자에게서 온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파란만장이 여자의 삶이다. 소설은 방대한 4세대의 이민사를 설명에 의지하면서도 스킵기법으로 순식간에 정리한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았고 흡입력도 있었다.
영화<미나리>는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인과는 구별되는 미국인 꼬마 데이빗이 주인공이다. 영화는 아버지 세대의 미국 이민과 더불어 외할머니를 초청하여 미국 내에 정착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민 1.5세대 정도로 소개되는 데이빗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이야기가 <미나리>다. 영화에서는 교회에서 만난 또래 친구가 데이빗에게 넌 왜 얼굴이 납짝하냐는 한 장면으로 압축하여 보여주지만 같은 이민자라도 동양인에 대한 차별이 그려진다. 그 외는 새로운 세계에 어떻게 정착할 것인가? 가 주요 이야기를 이룬다. <파친코>에서 선자가 주요 인물이었듯, <미나리>에서도 데이빗의 외할머니 순자는 주요 인물이다. 그 둘은 모두 생명력이 강한 한국인의 표본 같다.
<파친코>의 주인공들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어쩔 수 없이 일본에 살아남았지만, 4세대가 지났어도 그들은 일본 내에서 이방인으로 차별받는다. 일본에서는 냄새나고 싸움질하는 조선인으로 낙인 찍히고 차별받는다. 해방된 두 개의 조국에서는 그들을 일본인으로 대했고, 그들도 일본인 행세하는 게 편했다. 일본 내에서 그런 멸시와 차별 속에서 선자의 가족은 조선인이 살아남기 위해, 그들이 그렇게 싫어하던 고한수에게 도움받고, 야쿠자와 관련된 파친코 사업을 하게 된다. 그들의 가족은 파친코로 성공하여 돈을 벌어 굶주림을 면하고 일본인까지 도울 수 있었지만 차별은 여전했고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 선자의 두 아들 노아와 모자수를 통해 일본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의 분열된 페르소나를 보여준다. 조선인임을 숨기고 일본인척 살아가는 노아와 조선인임을 숨기지 않지만 차별에 분노하다 수궁하고 받아 들이는, 착한 조선인으로 살아남으려는 모자수가 이민 3세대의 다른 모습이다. 두 형제가 시작은 다르지만 파친코 사업으로 부유하게 된다. 심지어 일본인 아내와 자식들에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자살하는 노아나 착하고 성실한 조선인으로 살아남은 모자수의 인생은 파친코와 닮았다. 요행에 의지한 삶이다. 하지만 행운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들은 뛰어난 능력이나 성실함으로 행운을 잡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일본인의 시선을 여전히 차갑고 모멸차다.
아버지 모자수의 파친코 사업 덕분에 일본에서 경제적 여유를 갖고 살았던 솔로몬은 요코하마의 국제학교를 다녔고 미국으로 유학까지 하게 된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난 조선인 피비를 사귀게 되고, 결혼하려고 일본으로 같이 돌아온다. 미국 이민자 2세인 피비의 눈에는 일본 이민자들의 삶이 너무나도 다른 걸 금방 눈치챈다. “미국에서는 한국인이니 조선인이라는 게 없었어. 왜 내가 남한 사람 아니면 북한 사람이 돼야 하는 거야? 이건 말도 안 돼! 난 시애틀에서 태어났어. 우리 부모님은 조선이 분단되지 않았을 때 미국으로 갔고”“왜 일본은 아직도 조선인 거주자들의 국적을 구분하려드는 거야? 자기 나라에서 4대째 살고 있는 조선인들을 말이야. 넌 여기서 태어났어. 외국인이 아니라고! 이건 완전 미친 짓이야. 네 아버지도 여기서 태어났는데, 왜 너희 두 사람은 남한 여권을 가지고 다니는 거야? 정말 이상해.”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여서 그런지 속지주의를 원칙을 가지고 미국 내에서 태어나면 시민권이 자동으로 부여되지만 일본은 그렇지 않았던 거다. 일본은 귀화하기 전에는 일본에서 아무리 오래 살아도 매년 외국인 등록을 하며 살아야 한다. 그에 따른 차별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압제자 국민이 되려 하는 것은 수치스러운 짓이라 여기는 재일 조선인도 있다. 일본 정부는 아직도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피비의 항변에 솔로몬은 일본을 옹호한다.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나라기 때문이다. 둘이 결혼하려고 찾아온 일본에서 피비는 미국으로 떠나고 솔로몬은 남는다. 규칙을 잘 지키고 착한 조선인이 되어 세금 내면서 대가족과 살겠다고 선택한 솔로몬이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말이다.
일본의 귀족 출신인 가즈는 일본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파악한다. 왜냐하면 그는 어려서 외국생활을 하며 자신의 나라를 객관화 시킬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변명할 필요 없어. 조선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아. 너희 아버지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파친코를 선택한 게 분명해. 아마 훌륭한 사업가겠지. 네 아버지는 후지나 소니에서 일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회사에서는 조선인을 고용하지 않잖아. 알지? 어이, 콜롬비아 대학생 청년, 사실 너도 고용해줄지도 의심스러워. 일본의 많은 곳에서는 아직도 조선인들을 교사와 경찰, 간호사로 고용하지 않아. 넌 돈을 많이 버는 데도 도쿄에서 방을 빌릴 수도 없잖아. 빌어먹을 1989년! 뭐 네가 그 모든 것을 공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잘못된 거야. 난 일본인이지만 멍청하지 않아. 미국과 유럽에서 오랫동안 살았어. 일본인이 이 땅에서 태어난 조선인들과 중국인들에게 하는 짓은 미친 짓이야.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야. 너희들은 혁명을 일으켜야 해. 그런데 그다지 항의를 하지 않잖아. 너와 네 아버지는 이 나라에서 태어났어. 그렇지? 아버지가 청부살인자라도 난 신경 안 써. 네 아버지를 고발하지 않을 거야.”
“그런데 말이야, 자기들 그림자도 무서워하는 신체 건강한 중산층 사람들은 전부 다 정기적으로 분기마다 일반세를 복리까지 쳐서 할부로 내고 있어. 안전하게 살다보면 그렇게 된다고. 하지만 나라면 그런 게임 따위는 집어치울 거야. 이용할 수 있는 모든 이득을 다 이용할 거라고. 날 깔아뭉개려는 인간은 누구든 때려눕힐 거야. 멍청이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는 없지. 특히 그런 것을 받을 자격도 없는 놈들한테는 말이야. 지질한 녀석들은 눈물 쏙 빠지게 밟아줘야 해.”모자수는 가즈에게 모든 사람들은 세금을 내는데 성공 세금은 사람들의 시기 때문에 내는 거고, 실패 세금은 착취 때문이라는 설명을 듣는다. “일반 세금은 너처럼 자신이 보통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들이 내는 거야.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세금이지.”“네가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걸 아는 것보다 더 끔찍한 건 없어. 그만큼 형편없고 보잘 것 없는 존재가 또 없지. 그런데 훌륭한 선조들이 태어난 이 위대한 일본이라는 나라에서는 모두가 남들과 똑같아지고 싶어 해. 그래서 살기 안전한 곳이지만 공룡마을이기도 하지. 멸종된 곳이라는 얘기야. 네 몫을 떼어다가 어디 다른 곳에 투자해. 누군가는 너 같은 젊은이에게 이 나라의 진실을 알려줘야지. 일본은 전쟁에 져서, 또는 나쁜 짓을 해서 망하는 게 아니야. 더 이상 전쟁이 없어서 평화로운 시기에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이 되고 싶어 하며 남들과 달라지는 걸 끔찍하게 무서워하기 때문에 망하는 거야. 그게 아니면 일본의 엘리트층은 영국인과 백인이 되고 싶어 하지. 딱하기 짝이 없는 인간들이야.” 그는현재 일본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진단한다. 하지만 그런 그도 솔로몬의 뒤퉁수를 친다. 가즈의 말대로 이용할 수 있는 이득을 다 이용하여 솔로몬의 도움으로 땅을 산 뒤, 솔로몬을 야쿠자라고 배신하는 것이다. 참으로 가즈답고, 일본인 답다. 그럼에도 솔로몬은 미국행이 아닌 일본에 남아 가즈의 표현대로라면 착취당하는 쪽을 선택한다. 참으로 어이없는 선택이다. 모든 인간이 현명한 쪽으로 생각하고 살지는 않는다.
물론 작가는 그런 일본인 속에서도 공정하거나 착한 일본인을 등장인물로 배치한다. 그래서 모자수의 아들 솔로몬은 일본만이 아니고 어느 사회에나 착한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은 있다고 미국인 애인 피비에게 말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솔로몬이 마지막 세대인데, 그는 애인 피비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시민권을 얻을 수 있었으나 거부한다. 솔로몬의 엄마였던 유미가 그렇게 꿈에 바라던 천국이었던 미국을 아들은 스스로 놓아버린다. 그리고 아버지의 파친코 사업을 이어받으며 자이니치로서의 삶을 이어간다. 작가가 말하는 역사가 망쳐놨지만 그래도 괜찮아는 솔로몬의 선택이다. 그는 피비를 따라 미국인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도 자이니치의 삶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무엇이 괜찮다는 걸까?
이 소설은 현재 일본에서 살아가는 자이니치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어서 그렇겠지만, 솔로몬 개인 입장에서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훨씬 더 희망적인 결말이었을 것이다. 그것이 이민자들의 나라 미국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민진의 부모도 미국으로 이민하여 신문가판대를 시작으로 자식들에게 보다 나은 삶을 주기 위해 일했다. 소설의 주인공 선자의 삶도 이민진 부모의 삶과 다르지 않다. 결국 이루지 못하지만 솔로몬의 엄마인 유미의 꿈도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건 나의 의견일 뿐이다. 현실적으로 지금도 일본에서 살아가는 일본 내 조선인이 있고, 그들의 삶은 계속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는 그들을 같은 이민자로서 위로 하고 싶었을 것이다. 아이러니지만 일본인 가즈의 대사를 통해 조선인들이여, 이제 고통과 불합리를 감내하면서 살지말고 혁명을 하라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들은 이상하게도 거세된 사람처럼 착하고 순한 사람들만 등장한다.
그럼 미국으로 이민 간 <미나리>의 사람들은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그들은 철저하게 미국사람으로 살아가려 하는 거 같다. 그러면서도 한국계 미국인이라는 정체성이 자리를 잡았다. <파친코>에 비해 1.5세대까지를 다룬 <미나리>는 감정에 있어 조금 더 섬세하고 상징적이다. 그것도 철저하게 미국적 상징을 획득하고 있다. 1965년 이후 미국의 이민법 개정으로 한국인들이 미국으로 많이 넘어갔다. 물론 그 이전에 넘어간 사람들도 있다. 초기는 하와이의 농장에 노동자로 갔다가 정착한 이들로 시작한다. 그들도 일본 이민자들처럼 고생을 많이 했다. 차별도 많이 받았다. 법적으로는 표면상으로는 미국은 차별이 없다. 하지만 백인을 제외한 다른 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미국에서 벌어진 아시안계 미국인을 향한 테러와 폭력은 그 현실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미국 이민자들과 일본 이민자들의 성격과 지위가 다름은 확실해 보인다. 먼저 법적인 신분이 그렇고 경제적 신분이 다르다.
영화 <미나리>를 살펴보자, 1980년대 후반 서로를 구원하겠다고 다짐하던 제이콥 부부는 미국으로 이민하여 돈을 벌고 아칸소에 겨우 땅을 산다. 그들은 언어적으로도 직업으로도 서투르다. 그들은 조국에 살 때, 나름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미국에서 성공하여 서로를 구원하고자 한다. 하지만 그렇게 이민 온 미국에서 그들은 밑바닥 계층의 노동으로 힘겹게 살아간다. 영화에서 두 부부는 병아리 감별사로 LA에서 어는 정도 돈을 모아 아칸소에 커다란 땅을 사고 정착하려 한다. 땅은 조국에서도 중요하지만 미국에서 땅이 갖는 의미는 매우 상징적이다. 예전에 영화 <화 앤 어웨이>에서 국가가 이민자들에게 공짜로 토지를 불하하던 시절과는 다르지만, 주인공의 아버지는 병아리 감별사로 번 돈으로 아칸소에 대규모의 땅을 사서 농장주가 되는 것이 꿈이다. 그가 가난을 벗어나 농장주가 되려는 것은 현실적인 아내의 반대에 부딪치지만 신념에 가깝다. 그는 아칸소에 도착하자마자 땅을 만져본다. 이것이 자신이 원하던 기름진 땅이라고. 1880년대의 감자기근으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신대륙에 들어와 만졌던 그 땅 말이다.
주인공은 미국으로 이민 온 제이콥 부부 같지만 사실 주인공은 부부의 아들과 딸이 주인공이다. 그들의 2세인 아들 데이빗은 미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영화의 첫 장면은 아칸소의 농장으로 이사를 오는 장면인데 아들의 모습이 먼저 보인다. 그 아들 데이빗에게는 심장에 구멍이 있어 맘껏 뛰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는 몸에서 솟는 기운을 발산하고 싶어한다. 두 부부는 아칸소에 와서도 같이 일을 해야 하니 아들을 돌볼 보모가 필요하다. 제이콥의 아내는 아이의 건강과 오늘의 안락함을 담보로 불확실한 미래에 투자하는 것은 자살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갈등한다. 자식들에게 '아빠가 무언가 이루어 내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제이콥은 아내의 불만과 팍팍한 현실이 장밋빛 미래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틀렸지만 나중에는 맞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당장은 여유가 없다. 부부의 갈등은 심해지고, 작물은 썩어가며, 돈이 없어 단수가 되더니, 농작물 공급 계약은 갑작스레 취소된다.
한국에 있던 제이콥의 장모 '순자'를 미국으로 초청하여 같이 살게 된다. 그렇게 가족은 3대를 이루면 살게 되는데 데이빗과 할머니의 소소한 갈등이 주요 이야기이다. 데이빗은 한국 냄새로 대표되는 할머니가 싫다. 쿠키를 굽고 요리를 하는 전통적인 할머니와 다르다고 싫다고도 한다. 전통적인 할머니는 <파친코>에 나오는 자애롭고 강인한 선자가 대표적일 것이다. <미나리>의 순자는 욕도 잘 하고, 화투를 애들에게 가르치며 매우 현세적이다. 그럼에도 그녀는 매우 꿋꿋한 생명을 가진 존재 같았으나 어느 날 오줌을 지리고, 헛것을 보며 풍병이 온다. 그럼에도 이들 가족은 할머니로 인해 다시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것 같다. 순자가 뿌린 "미나리는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맛있는 미나리는 아플 땐 약도 되고, 아무나 와서 먹어도 된다." 그렇게 뿌려진 씨는 영화가 끝날 때즈음에 풍성하게 자랐다. 제이콥이 그 미나리를 따면서 "참 잘 자랐네, 할머니가 땅을 잘 보았네"하며 조금은 평온한 표정을 하며 아래로 쳐다보는 것이 영화의 마지막이다. 그렇게 미나리는 사건 사고가 있었던 시간을 뚫고 자란다. 그렇게 순자는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를 물가에 심어 미국에 성공적으로 정착시킨다.
그녀가 심은 ‘미나리’는 딸 부부와 손주들이 미국 내 성공적으로 정착했다는 상징일 것이다. 이민의 나라 미국에는 세계 각지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자신들이 살던 곳에서 가져온 씨앗들을 신대륙에 심는다. 살아남는 것이 있을 것이고 살아남지 못하는 것도 있었을 것이다. 그들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땅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길 바랐을 것이나 누구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서부 개척사의 상징 같은 포장마차처럼 생긴 '바퀴달린 집'과 아칸소의 정착지에 심은 농작물, 거기에 작물을 기르기 위해 찾는 물, 그리고 첫 수확의 농작물을 보관한 헛간의 불로 정화되고 마침내 주인공들은 미국 내에 정착되었음을 암시한다. 아들 데이빗은 헛간에 불이 난 후, 죄책감에 정신없던 할머니를 찾아 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녀의 길을 가로막고 같이 살자고 한다. 드디어 미국의 가족이 탄생된 것이다. 일본의 자이니치들이 일본인의 차별과 싸우거나 순응한다면 미국의 이민자들은 자신과 싸우는 것처럼 보인다.
조국을 잃거나 떠난 유랑자의 디아스포라가 우리 조국의 근대사다. 가깝게는 일본과 만주로, 연해주로, 사할린으로, 미국으로, 멕시코로, 쿠바로, 하와이로 이렇게 조국을 떠난 사람들만 이민자들일까. 조국에 남아 일제 잔재와 군사 독재를 겪으며 자신들의 전통을 증오하며 서구의 문물을 무조건 받아들인 우리들도 사실은 이민자와 같은 삶을 살았다. 압축된 100여년의 근대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과거의 조국과 결별하고 새로운 나라에 살게 된 이민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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