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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혹은 애니메이션/영화 이야기

기생충

바람분교장 2019. 6. 7. 09:56

봉준호의 <기생충>을 보고

 

한승태

 

영화 기생충을 아내와 보았다. 불편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그건 영화를 긍정할 때 자신에게 향하는 칼날 때문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면서 누가 기생충인가? 하는 질문을 받기 때문이다. 정상이면 누구든 기생충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 속의 꼬락서니(꼬라지)를 좀 보자. <살인의 추억>1980년대 군사정권 당시의 꼬락서니를 보여주는 것이라면 영화 <기생충>은 지금 당대의 우리 꼬락서니를 보라고 한다. 누구나 기생충이면서 아니기도 하다. 누군가 내게 질문한다면 아니라고 나는 기생충이 아니라고 그리고 사람에게 그런 기생충이라는 걸 누구도 명명해서도 안 되고 강변하겠지만 내 마음 속에서는 정말 당당할까, 하는 지점은 반성의 지점이기도 하지만, 분노의 지점이기도 하다.

 

영화 속 미장센이야 연극적 장치 같아서 너무 분명하고 뻔하다. 이번 영화는 <살인의 추억>처럼 자연스러운 미장센보다는 분명하고 날선 연극적 장치를 드러내고 있다. 지상과 지하, 박사장의 집 내부의 상하구조, 박사장 동네와 기택이 사는 동네의 수직 배치나 갈등의 구조에 있어서 가족 대 가족의 배치라든지 계급과 계급의 충돌이라든지, 사실 이런 건 그다지 뛰어나다고 할 건 아니다. 다만 그저 그렇게 도식적으로 배치되었구나 생각할 때마다 한 번씩 비트는 것은 재미있었고 뛰어났다. 그것이 이야기의 긴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긴장이 가장 고조되는 클라이맥스에서 내가 나를 바로 보게 하는 당혹감과 불편함의 실체가 이 영화의 전략이기도 할 터이다.

 

지하와 반 지하에 사는 근세와 기택 가족이 같은 계급인데 연대가 아닌 증오하는 이야기는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다. 우리는 비합리적이더라도 어마어마하다고 느끼는 것에는 저항하지 못한다. 대표적으로 신이 그렇다. 부당하더라도 감히 신에게 대항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지하실에 사는 근세가 박 사장을 신으로 떠받들며 존경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에도 분노는 신에게 향하는 것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향한다. 그렇기에 문광과 근세는 기택의 가족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경제학자 베블런이 떠올랐다. 가격이 내려가면 수요가 증가한다는 기존의 경제이론과 달리, 오히려 가격이 오를수록 과시욕과 모방욕에 의해 수요가 증가하기도 한다는 이론을 세운 미국의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 그의 이름을 딴 베블런 효과는 명품 같은 비싼 사치재 제품이 왜 불티나게 팔리는지 설명한다. 소비자는 왜 불합리한 소비를 하는가 하는 것에서 시작된 그의 이론은 단순히 데이터만을 다룬 경제학이 아닌 과시와 모방 같은 인간의 심리를 포함한 경제학이다.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은 근세와 기택 가족 같은 가난한 사람이 왜 보수가 되는가? 하는 문제를 설명한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선택만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경우 현재의 상황 속에서 고통을 받기 때문에 당연히 변화를 원할 것이고, 변화를 원한다면 체재를 바꿀 수 있도록 진보적이 돼야 할 텐데 그가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택과 근세 가족 같은 계층이 처한 현실은 합리적 인간으로서 존재할 여건 자체가 어렵다. 하루 벌어먹고 사는 힘든 삶 속에서 그들은 기존의 제도와 생활양식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버겁다. 아니 오히려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다른 어느 계층보다 충실해야만 그나마 기초적인 생존이 가능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위 소득계층은 당연히 기존 제도와 생활양식에 가장 순종할 수밖에 없고(그래야 그나마 하루라도 먹고 살 수 있기에) 현상이 유지되어야 생존한다고 생각하기에 그들은 보수적이 된다는 게 베블런의 분석이다. 근세가 박 사장을 신처럼 떠받들고 존경하는 것과 기택의 가족이 부자들은 착하다고 하는 담론은 이런 것에 근거한다. 이들에게는 최소한 합리적으로 살아갈 여건조차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부자일수록 민주당, 가난할수록 자한당을 지지한다는 201963일자 아시아경제의 기사( https://www.asiae.co.kr/news/view.htm?idxno=2019060311252988400)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합리적인 선택을 한다면 민주당과 자한당의 정책으로 보았을 때 하위 계층은 자신들의 삶을 개선시켜줄 정책을 지닌 민주당을 선택해야 하나 실제 결과는 소득 하위계층에서 자한당을 지지하고 소득이 중상위 계층에서 민주당을 더 지지하는 것으로 나왔다. 하위계층의 선택이 합리적이지 아닐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 외에도 얘기꺼리는 많지만 이 정도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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