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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육림랜드 /한승태

바람분교장 2019. 10. 5. 11:40

육림랜드

 

  한승태

 

한 때 육림育林의 날이 있어 이 공원을 위한 날로 알았다 육림연탄에 육림극장을 거느린 지방 소도시 꼬맹이였느니 그럴 만도 했겠다

 

공원 안에는 팔각정이 있고 한 때는 거기서 결혼하는 것으로 삼촌은 품위를 보장받았다 내게는 대회전차니 바이킹보다 곰과 호랑이가 조그만 우리 안에 귀찮다는 듯 앉아 침 흘리는 것이 더 신기했다 식욕을 가둘 수 있다니! 공원에는 호랑이 오줌냄새가 온통 넘쳐흘렀다

 

벚꽃이 떨어질 때 아이들은 행복한 한 때를 그곳에서 보냈다

 

이십여 년이 지나고 전국에 랜드가 유행하고 이곳도 이름을 바꿔달았다 베껴진 페인트를 다시 칠했지만 사람들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호랑이의 식욕이 건재한지 궁금했지만 그때 마주친 눈빛 때문에 가기가 두려웠다

 

또 십년이 지나고 호랑이의 식욕에서 태어난 오리 꽃닭 강아지 같은 집 동물을 보려고 인근 어린이집에서 찾아온다고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벚꽃은 또 까르르 떨어지고

 

식욕은 여름처럼 큰 입을 벌리고 새로운 허기가 꼬리를 흔들었다


<시인동네> 2019년 10월호 발표



춘천에는 오래 된 공원이 있다. 아마도 그건 춘천에만 있는 건 아닐 것이다. 80년대 한창 인기였던 공원이었지만 90년대 들어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문닫은 곳도 여러 알고 있다.
인간의 가장 오랜 욕망 중에 동물을 보고 싶다는 것이 있나보다 나라를 가리지 않고 동물원이 생기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동물원도 제국주의의 산물인데 현대사회에 여전히 유효하니 말이다. 제국의 시절 동물원에 아프리카인을 전시한 적이 있다. 그게 인간이라는 종이다. 제국주의는 자본주의로 이름을 바꾸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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