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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등감 혹은 콤플렉스
한승태(학예연구사)
1980년대 이전 生들은 조금 알 것이다. 연필에 침을 발라 글씨를 쓰면 연필심이 부러지거나 밀려들어갔다. 그것뿐인가, 공책은 또 어떻고, 그거 땜에 내가 공부하기 싫었다고 말한다면 농담이겠고 ㅎㅎ 연필 하나도 제대로 만들지 못했던 대한민국에서, 국가 권력과 자본이 판치던 세상에서 나만 열심이면 어떻게든 잘 살 거라는 덧없는 믿음을 실천해 왔다는 걸, 그럼에도 자괴감은 끈질기게 남아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왔다는 걸 내 또래 생들은 알 것이다.
1970년대 나는 내린천에서 춘천으로 유학을 왔다. 동네마다 태권도장이 있었고, 내 또래들은 태권도장에 다니거나 배우지는 않았어도 등짝에 주먹 하나 그려진 츄리닝을 입고 다녔다. 나도 공부가 아닌 태권도를 배우고 싶었다. 힘이 세고 싶었다. 촌놈이라고 아무도 깔보지 못하게 말이다. 그 시절 물 건너왔다는 외제들은 우리의 선망으로 아로 새겨졌고, 그것이 내 콤플렉스의 근원을 이루었을 것이다. 60년대 박정희와 불화했던 최홍희 2군단장이 외국대사로 나가며 몇몇 나라에 태권도를 보급했고, 결국 캐나다로 이민을 갔다. 그가 마련한 기반으로 70년대 초반 국가에서 지원하여 김용운이 국기원을 설립하고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라는 것을 개최했다. 이것의 역사를 짚어보자면 좀 유치하지만 그것도 콤플렉스의 하나 일 터이다.
각설하고, 그래서 1973년부터 방송된 MBC라디오 연속극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가 있었다. 거기에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나오는데, 연속극의 주인공 마루치는 바로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챔피언이었다. 사실 마루치와 아라치는 이란성 쌍둥이로 태백산에서 수염이 멋진 할아버지로부터 전통 무술을 배웠다. 아마도 택견이 아니었을까 한다. 하여튼 태백산에 기지를 지으려던 파란해골은 까닭 없이 할아버지를 죽이고 어린 마루치와 아라치는 이를 목격한다. 복수하고 싶지만 아직은 힘이 모자란다. 마침 서울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장 선생이 태백산에 놀러와 우연히 아이들을 만나고 장 선생은 아이들에게 태권도를 배워 힘을 키우라고 꾀며 산에서 도시로 데리고 내려온다. 그래서 태권도를 배우는데, 마치 그 과정(유연한 택견 이 아닌 직선화되고 제식훈련 같은 태권도를 배우는)은 근대화의 은유처럼 보인다. 어쨌든 마루치는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의 챔피언이 되었다. 그는 대회에서 코쟁이 미국선수를 때려눕히고, 결승전에서 반칙을 하는 야비한 일본 선수를 이겨 챔피언이 되었다.
대한민국에 태권도가 붐이 인 것은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열등감에 좌절하던 시절 선망하던 얼굴 허옇고 코가 높던 서구인을 때려눕히고, 일본놈을 주먹 하나로 무찌르는 태권 동자, 그때 우리는 누구나 태권 동자가 되고 싶었다. 그 상징이 주먹 하나였다. ‘하면된다’라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프로파간다를 교훈과 가훈으로 내면화하였다. 이런 인기는 애니메이션 <로보트태권브이>와 동명의 <태권동자 마루치 아라치>라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이후 나오는 모든 우리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은 모두 태권도 유단자로 그려졌다. 그때 우리는 태권도를 배우면 못하는 게 없는 줄 알았다.
이런 얘기를 뜬금없이 왜하냐면,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열등감 혹은 콤플렉스를 얘기하기 위해서다. 외제라면 최고라고 뼛속 깊이 각인된 내 또래에게는 그것을 극복한 오늘 날에도 은연중에 드러난다. 국내에서 잘 하다가도 해외에만 나가면, 전통적으로 우리보다 잘 살거나 운동을 잘 한다고 믿어왔던 국가와 대항전에서는 여지없이 주눅이 들었다. 그것이 스포츠에서만 그랬겠는가? 우리 생활 깊숙이 체화되어 남아 있다. 외국인이면 모두 미국인으로 취급했던 시절 영어도 그렇다. 여행 온 그들이 길을 물을까 근처에서는 얼굴도 마주치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1980년生 신세대가 나타났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조금이나마 여유를 갖던 시절이었다. 많이 풍족하지는 않아도 살만했다. 1987년 이후 정치도 좀 나아졌다. 어떻게 보면 이들은 민주주의를 어릴 적부터 누린 세대라고 생각된다. 까놓고 말하자면 1989년生인 수영선수 박태환의 등장을 보며 뭔가 우리 세대와는 다르다는 걸 느꼈다. 김연아도 그랬다. 손흥민도 그랬다. 발랄했고 주눅 들지 않았다. 이것은 스포츠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문학계라고 다르지 않다. <모자>를 쓴 소설가 황정은으로 대표되는 80년대 이후 生 시인 작가들은 과연 달랐다. 1980년 이전 세대들의 글에 은연중 드러나는 열등감 혹은 콤플렉스가 느껴지지 않았다. 황정은은 무능한 아버지를 ‘모자’로 능청스레 다루었다. 그들은 황지우의 시에서처럼 아버지 자전거 뒤에 앉아 “아버지 밟아요, 좆나게 밟아!”라는 아무리 힘들어도 힘든 내색 말고 일하라는 등골 빨고 희화화하는 자식들이 아니다. 물론 황지우의 아버지는 가부장과 권력을 희화화 하는 것이긴 하지만.
예전 열등감의 근원이 일본과 미국으로 상징되는 서구였다. 그러나 70여년 만에 우리사회는, 우리들은 아니지만 우리 후배들은 바뀌었다. 다행이다. 그들에게까지 열등감이 유전되지 않기 바란다. 구김살 없이 밝고 유쾌하게 살아라. 그게 너희들의 권리다. 아직도 열등감을 버리지 못하거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다만, 이미 그들은 구시대의 유물이다. 선의는 선의로 받고 나쁜 일에는 정의감으로 크고 넓게 사색했으면 좋겠다.
요즈음 일본의 수출규제를 보면 열등감이 보인다. 자신들이 뒤처지고 있다는, 그래서 예전에 지지리 가난했던 이웃이 자신보다 잘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히스테리를 부린다. 그들에게 우리는 아직도 식민지 인민들이어야 한다. 그러니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들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르는 언론과 열등감에 찌든 할배들이 있으니 어련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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