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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겹_김안

바람분교장 2019. 4. 9. 16:40


김안




모든 끔찍한 일들이 한 사람만의 탓인 것처럼

우리가 보아야만 했던

그 모든 비극과 단순과 비참들이, 그리고

일상을 나누던 이 방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도 싸우는 이유조차도

죽이고 싶도록

죽고 싶도록

한 사람만의 탓인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우리는 말보다 빠르게 단죄하며 개종하며

입을 다물고선

살기 위해 조응하며

살기 위해 악마가 되어가는 우리하는 겹의 구조

용서와 망각을 강요하는 국가라는 장소와

현실의 책들이 겹쳐지듯

우리는 애초에 불행의 겹으로 태어났는지도

홀딱 벗은 채로야만 터지는

성스러운 사랑의 괴성과 공포스러운 세속의 괴성,

그리고

방 안 가득 부풀어오르던 정직한 삶과

살에 가까운 살들이 기어이 만나는 불행의 체위.

우리가 나누었던 말과,

말이 아니었던,

말의 그물을 물고기처럼 빠져나가던 말의 잔해*들이

겹의 구조로 뒤섞이는 밤,

영혼이 살을 만나 춤을 추듯

겹으로 누워

우리 중 누군가 그 한사람이 될 때까지,

자유롭고 비참한 악마가 될 때까지.



2018년 현대문학 ?월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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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탱고와 어울리는 작품이다.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는 당대에도 지금도 우리들의 욕받이다. 기어이 욕을 먹어야 할 바람이 있고, 기꺼이 욕받이를 자처하였던 이도 있다. 한 사람을 악마로 만들때 공모한 사람으로서 서로서로 겹을 만들며, 살기 위해서라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변명할 때, 우리는 나는 악마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 겹만 벗으면 우린 모두 살기 위한 악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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