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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본문
시인이여, 너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한승태
최근 여성 시인, 작가들의 고백 및 작품 발표로 문학계가 낯부끄러운 이전투구의 장 같다. 그러나 진즉에 터졌어야 할 일들이다. 우리가 사는 당대는 바뀌고 있다. 변한다는 걸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저항도 만만치 않다. 첨단을 달린다는 글 쓰는 집단에도 예외가 아니다. 나부터도 그렇다. 고백하자면 나의 글도 여자에게 마음을 얻기 위한 제스처였음을 부인하지 못한다. 내가 무슨 대단한 세계관이 있었겠는가. 그런 거 없었다. 대학시절부터 친하게 지내던 후배들에게도 참 많은 누를 끼치고도 독설을 퍼붓고, 어찌어찌해보려고 했다. 인정한다. 마치 그것이 문학하는 자의 특권인양, 겉으로는 아닌 척하면서 그런 선배들을 부러워했으면서도 욕했다. 그러면서 선배가 되어서는 나도 그랬다. 미안하다. 친구 후배들이여. 정말 미안하다.
독자 대중이 시를 문학을 대하는 태도와 작가와 시인이 문학을 대하는 태도에 분명한 간극이 있다. 시인, 평론가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이 있다. 시에는 새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현대시는 조선 시대 시, 시조와는 다르다. 인식의 차이에서도 세계를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확연한 차이를 드러낸다. 조선시대 아니 1930년대까지만 해도 더 나아가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자연과 합일이라는 관점의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때 새로움으로 등장한 것이 이상과 백석 김수영 이런 시인들의 작품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균열을 목격하고 그것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와 확연하게 다른 세계였고 언어였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개인의 세계관이 다양하게 나오다보니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멀어져간 시는 이해에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인들은 시를 쓰며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한다. 그들에게 새로움은 화두다. 그 새로움으로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시인의 치열한 자기세계의 천착이 독자에게는 독법에서 갈피를 잃거나 과거회귀의 경향을 드러내게도 한다. 독자는 과거에 즉각적 이해가 가능한 자연과의 합일의 세계에 안도하거나 위로 받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 아류 시인이 그런 세계를 열심히 카피하고 있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지금을 사는 독자도 시인도 자연에서 위로 받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지 모르겠다. 인간 삶의 물질적 조건은 풍요로 나아졌는지 모르지만,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서 우리 몸과 마음을 수탈당하고 있기에 점점 더 위로 받고 평온해지고 싶기 때문인지도. 그럼에도 보편성에서 멀어지는 자기만의 세계 추구가 독자와의 간극을 점점 벌려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 독자와 시인이 서로 접점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있다. 술에 대한, 아닌 문학에 대한 낭만적 관념 혹은 치기이다. 독자도 문학의 낭만성에 기대려하고 시인들도 이런 부분에 있어서는 옛 시인들의 낭만성을 회복하고 싶어 하고 거기에 기대어 자신의 시인됨을 자랑하기도 한다. 마치 술을 먹어야 작품이 질이 보장되거나 자기 세계가 완성된다는 듯이, 심하게 애기하면 술자리의 기행이 시인됨을 말해준다는 듯도 하다. 그리고 일정 부분 독자도 그런 부분을 인정해주는 때(아마도 1980년까지 아닐까)가 있었다. 새로움을 무기로 필봉을 휘두르던 시인도 술이라는 아우라 앞에서는 고전으로 돌아갔다. 고전 시인들의 아류를 자처하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 일어나는 미투(MeToo)현상도 여기에 연유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대가 이미 바뀌고 있는데, 첨단을 무기 삼던 시인들이 아직도 과거의 아우라에 허우적거리는 꼴이다. 당대는 바뀌고 있다. 모든 생명에 경의를 표하고 대화를 하는 시인이여, 그대들이 즐기는 술자리도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이글을 적으며 우려되는 건, 어느 한 시인이나 작가가 당대를 모두 대표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시인이나 작가 등 문학인이 도덕적이어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거다. 문학은 도덕을 얘기하는 도구가 아니기도 하고 문학이 도덕적이지 않아도 스스로의 위악을 드러내면서 당대의 도덕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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