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한승태 시집_바람분교 본문
나의 오마니는 어려서부터 산에 치성을 다니시던 분이다. 소장사를 하던 외할아버지는 일년에 몇달씩 산에 들어가 주문을 외며 수련을 하시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가 나이 육십에 시장에서 장사를 하고자 교회를 나가셨다. 춘천의 3단지 시장은 1980~90년대 장사가 잘 되던 곳이다. 그러니 단속도 자주 나왔다. 정신없이 도망다니다 보니 생선집 아저씨가 자기 가게 앞에 자리를 마련하겠노라고 일요일 교회에 같이 가자고 포교를 하였다. 그러니 얼마나 맘이 불편했을까. 교회를 갔다오는 밤이면 꿈을 꾸셨는데, 이런 것이었다. 방안 가득 호랑이가 들어와 빙빙 돌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천장에서 손 하나가 내려와 휘저으니 호랑이가 도망가더라며 교회를 맘 놓고 다니셨다. 오마니 해석 왈, 호랑이는 산신이고 천장의 손은 하나님이니 하나님이 더 세다는 것이었다. 우리 오마니만 그러겠는가마는 그렇게 교회에 다니신지 30여년이다. 그런 오마니와 한 때는 종교 문제로 심각하게 싸우기도 많이 했다. 흔히 말하는 환자수준이셨으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마니를 위해 하나 쓴 게 이거다. 나름 이해해 보려한 흔적이다.
약속
멕시코 만류는 쿠바를 지나 북쪽 그린란드에 이르러 다시 심해 해류로 흘러 적도까지 다시 오는데 이천 년이 걸린다.
온다 저 가을
강물도 흐르고 하늘도 흘러
온다 내가 사는 내린천 상류
저 하늘을 흐르는 푸른 해류
예수의 울음이 막 터져
마구간의 지붕 틈으로 흐르던 하늘은
지금 내 몸으로 흘러
즈믄 해 가고 새로
즈믄 해가 흘러오도록 도착하지 못한
적도의 햇살, 그 느린 포교의 여정을
눈치 챌 수나 있을까 흐르지 않는 듯
먼 우주의 햇살이 흘러
쿠바의 푸른 하늘 아래
혁명과 카니발의 땡볕을 싣고 흘러
그린란드의 빙하에 더운 피를 부려놓고
구원의 밑바닥 짓눌린 암흑의 길들을
느낌도 의지도 없이 흘러
나의 혈관 속으로 심해의
수압을 서서히 덥히면서
햇살의 나른함을 되찾으며
난바다가
예수의 더운 피가 온전히
뿌리이며 이파리가 하나의 몸으로
새싹으로 나무로 솟아오른다
한승태 시집 <바람분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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