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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태 시집 _아버지와 달과 약속

바람분교장 2017. 12. 12. 16:48

지난 주 금요일에는 전라도 완주의 삼례책마을에서 시집<바람분교>을 주제로 문학 강연이 있었다. 책마을 이사장인 박대헌 관장의 초청으로 이루어진 행사였다. 마을 주민 15여명이 오후 5시 책카페에 모였다. 26세 청년부터 78세의 어르신까지 폭이 넓은 청중이었다. 

내가 시집에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를 주로 얘기했다. 주로 나이든 어른들이 내말에 공감을 표하는 것으로 보아 내 감수성은 그리 젊은 것은 못 되나보다. 특히 <아버지와 딸> 얘기에 눈물을 글썽이던 아주머니는 자신의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일흔이 넘은 어르신은 눈만 껌뻑이셨다.

사실 한국 기독교를 얘기하다 우리 어머님이 기독교에 귀의하는 과정을 설명하자, 많이들 웃으며 공감하셨다. 그런 어머님을 위한 시를 썼다고 하니 꼭 낭송을 들어보고 싶다고 하여 딱 한 편을 더듬거리며 읽었는데 그게 '약속' 이다.



아버지와 딸

-To Michael Dudok de Wit 그리고 나의 딸

 

 

그의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왔다 누구나

지나야하는 방죽에는 높고 푸른 봄의 행진

페달이 힘겹던 언덕도 아름다워라, 그의

앙다문 치아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포플러 그

하늘과 맞닿은 심연은 강 건너로 길게 이어지고

포옹하고 못내 돌아서던 나룻배를, 그의 뒷모습을

물소리는 오래도록 배웅했으니

구름은 몸을 바꿔 가며 흘러가고 흘러왔지만

비의 냄새는 풍성히 그를 돋아나게 할 뿐

한 떼의 어린 자전거는 희희낙락했으며

심연은 강폭만큼 더 깊고 더 길고 더 넓어졌으니

어쩌면 포플러는 그를 연주하는 손풍금 같았으리

바람은 쓰러지듯 자꾸 오던 길로 밀어주었으나, 그를 닮은

아이들은 또 강변에 와 손을 씻고 점점 뿌리에 가까워져

나무만큼 키가 자랐고 길은 혼자 걷는 밤이어서

쓰러지는 자전거를 몇 번이고 일으켜 세우듯

어린 포플러를 키우며 그의 그림자는 커가고

더욱 완곡하게 갈대는 자란다

종달새의 모래알 같은 울음으로

어린 딸의 자전거 바퀴는 하늘로 구르고

종내에는 두 바퀴의 균형이 힘겨워져 가는 날도 있어

나는 방죽을 따라 길었던 빈자리를 글썽이며

저무는 부녀를 오래도록 지켜보는 것이다




 

약속

       멕시코 만류는 쿠바를 지나 북쪽 그린란드에 이르러 다시 심해 해류로 흘러 적도까지 다시 오는데 이천 년이 걸린다.    

                

 

온다 저 가을

강물도 흐르고 하늘도 흘러

온다 내가 사는 내린천 상류

저 하늘을 흐르는 푸른 해류

예수의 울음이 막 터져

마구간의 지붕 틈으로 흐르던 하늘은

지금 내 몸으로 흘러

즈믄 해 가고 새로

즈믄 해가 흘러오도록 도착하지 못한

적도의 햇살, 그 느린 포교의 여정을

눈치 챌 수나 있을까 흐르지 않는 듯 

먼 우주의 햇살이 흘러

 

쿠바의 푸른 하늘 아래

혁명과 카니발의 땡볕을 싣고 흘러

그린란드의 빙하에 더운 피를 부려놓고

구원의 밑바닥 짓눌린 암흑의 길들을

느낌도 의지도 없이 흘러

나의 혈관 속으로 심해의

수압을 서서히 덥히면서

햇살의 나른함을 되찾으며

난바다가

예수의 더운 피가 온전히

뿌리이며 이파리가 하나의 몸으로

새싹으로 나무로 솟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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