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이장 / 한승태 시집 본문
이장(移葬)
한 여름 윤달이 뜨고
한 가지에서 뻗어나간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저승과 이승을 가로질러
상남(上南)의 산골에서 내려오신 할아버지와
내린천 골짜기에서 나오신 작은할머니
城南의 시립묘지에서 오신 큰아버지 내외분
제일 가까운 해안의 뒷골목에서 유골 대신
몇 가닥의 머리카락만 보내오신 큰할머니와
공원묘지에서 나를 보내신 아버지
사촌들은 말없이 구멍을 팠다
야트막한 산은 마치 여자의 음부처럼 둔덕이었다
지관은 음택이라고 했다
나는 그게 왠지 음핵처럼 들렸다
잣나무 그늘에 누워 뼈를 말리는 망자들
나는 검불을 긁어모았다 여기저기
떨어진 삭정이는 꼭 집 떠난 큰할머니의 뼈 같았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신 걸까요, 할아버지
알 수 없는 작은 벌레들이
나뭇가지를 갉으며 아기처럼 울었다
패철을 든 지관의 말에 따라
망자는 다시 동서남북을 가려 누웠다
망자의 집이 꼭 애기집 같았다
아내의 뱃속에서 둘째가 자꾸 발길질을 했다
한승태, 시집<바람분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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