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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 킬
신덕룡
나뭇가지인가 했는데 머리가
경운기 바퀴에 깔려 으스러진 살모사였다
죽은 살모사가 들길을 걷는 내게
맹독성의 삶도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살모사의 전생은 당당했으리라
거칠 것 없던 한여름의 풀숲과
한 번도 사냥에 실패한 적 없는 날카로운 이빨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독의 농도와 밀도는 더 짙어졌을 것이다
빠르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공격성의 근원은
몸에 새겨진 생의 첫 공백
발가벗겨진 채 빛 속에 던져졌던 한순간이 아니었을까
눈을 뜨자마자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찰나의 공포 같은 것
겹겹이 싸여 있던 쓸쓸 하나,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한순간도 떨쳐버릴 수 없어
눈 부릅뜨고 전우좌우를 살피면서 끌고 온 길 위에
바퀴자국으로 들러붙은 몸
남겨놓고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노을 아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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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하게 살려면 자신 만의 맹독 하나씩은 간직해야 한나 보다
맹독을 가져도 어느 한 순간에 추락하는데, 그런 맹독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삶이여, 꽃뱀은 꽃이라는 유혹을 몸에 두르고 살건만, 내 삶은 유혹적인가? 그도 아닌가? 시간이 자나고 세월이 더께를 늘려갈 때마다 독의 농도와 밀도가 짙어졌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내게는 없구나. 내 몸에 새겨진 생의 공백은 무엇인가, 내가 모르는 나의 독도 이 땅 위에 태어나자 마자 들이닥친 추위와 공포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격성이 내재된 것일텐데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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