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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로드킬_신덕룡

바람분교장 2016. 12. 25. 10:03

로드 킬

                     신덕룡

나뭇가지인가 했는데 머리가
경운기 바퀴에 깔려 으스러진 살모사였다

죽은 살모사가 들길을 걷는 내게
맹독성의 삶도
아차, 하는 순간 추락할 수 있다는 걸 말해주었다

살모사의 전생은 당당했으리라
거칠 것 없던 한여름의 풀숲과
한 번도 사냥에 실패한 적 없는 날카로운 이빨
계절이 바뀔 때마다
독의 농도와 밀도는 더 짙어졌을 것이다


빠르고 강하게 살아야 한다는 공격성의 근원은

몸에 새겨진 생의 첫 공백

발가벗겨진 채 빛 속에 던져졌던 한순간이 아니었을까

눈을 뜨자마자

한꺼번에 밀려들었던 찰나의 공포 같은 것


겹겹이 싸여 있던 쓸쓸 하나, 어디론가 가는 중이다

한순간도 떨쳐버릴 수 없어

눈 부릅뜨고 전우좌우를 살피면서 끌고 온 길 위에

바퀴자국으로 들러붙은 몸

남겨놓고


경운기가 털털거리며 지나가는 노을 아래

고개를 갸웃거리며 느릿느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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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릿느릿하게 살려면 자신 만의 맹독 하나씩은 간직해야 한나 보다

맹독을 가져도 어느 한 순간에 추락하는데, 그런 맹독도 없이 그냥 살아가는 삶이여, 꽃뱀은 꽃이라는 유혹을 몸에 두르고 살건만, 내 삶은 유혹적인가? 그도 아닌가? 시간이 자나고 세월이 더께를 늘려갈 때마다 독의 농도와 밀도가 짙어졌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내게는 없구나. 내 몸에 새겨진 생의 공백은 무엇인가, 내가 모르는 나의 독도 이 땅 위에 태어나자 마자 들이닥친 추위와 공포에 살아남아야 한다는 공격성이 내재된 것일텐데 모른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