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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서정주_자화상

바람분교장 2016. 9. 27. 17:25

자화상

 

서정주

 

 

아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甲午年)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八割)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罪人)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天癡)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련다.

 

찬란히 트여 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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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는 아름답다. 서정주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의 삶을 그대로 보여주는 이 시는 분명 수작이다. 그는 현실보다 신화와 전설, 불교 속에서 탐미적인 시를 많이 써왔다. 그는 시에 있어 분명 재능이 많은 사람이다. 그가 이땅의 풍토가 좋지 않을 때 나왔다는 게 문제다. 그 좋은 재능을 자신의 팀미에만 사용하였으며, 더 나아가 일제시대 친일어용문학지의 편집을 맡아보며, 청년들에게 일본을 위한 전쟁에 나가 죽으라고까지 독려하는 시(마쓰이 오장을 위한 송가)와 글을 썼다.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주제 중에 중요 주제가 생명이기도 하다. 해방 이후 이승만의 전기를 쓰고,  광주학살의 원흉인 전두환 찬가를 써서 같이 살았던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했다. 

그는 "일본이 그렇게 쉽게 항복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못 가도 몇 백년은 갈 줄 알았다" 며 창피한 이야기들이란 글에 밝히고 있다. 이렇듯 병든 수캐마냥 살았다는 건 매우 솔직한 진술이나 이 또한 죄다. 설령 그가 친일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른 사람이 고통받고 죽어갈 때도, 그 좋은 재능으로 자신만을 위해 사용한 것도 죄다. 그러나 그를 쉽게 욕하지 못하는 건 그의 솔직함 때문이다. 자신의 아비를 종이었다고 하거나 병든 수캐라고 고백하기는 쉽지 않다. 이 시는 이런 솔직한 고백 위에 서 있다. 

한편, 그는 뉘우치지 않았다. 하늘의 뜻에 따라 먹고살기 위해 그랬지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다고 그는 주장했다. 역설적으로 그가 아무런 짓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나쁜 짓이다. 그의 세계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람들이 죽어나가더라도 관여하지 않았다면, 비참한 현실을 외면하거나 침묵한 죄, 예술을 빙자하여 불의 앞에서 눈 돌린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순수예술을 빙자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불순하다.    _한승태(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