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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본문
공포는 무엇을 먹고 사는가?
- TV시리즈 <진격의 거인>
한승태 (시인/학예연구사)
제 목 : 진격의 거인
장 르 : 판타지/액션
제 작 : WIT STUDIO
연 출 : 아라키 테츠로 / 만화 원작자 : 이시야마 하지메
형 태 : 시리즈물 총 25화
제 작 국 : 일본
때때로 공포가 엄습하는 것은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떠돌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다. 어떤 규칙성도 합리적 이유도 없는 공포, 그 낌새가 여기저기서 선뜻선뜻 나타나지만, 결코 통째로 드러나지 않는 공포야말로 가장 무시무시하다. 공포란 곧 불확실이다.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것에 대한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 그것에 맞서 싸우려 해도, 싸워볼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 글에 적합한 애니메이션이 있다. <진격의 거인>이 그것이다. 이시야마 하지메의 원작 만화를 아라키 테츠로가 연출한 25편 tv시리즈 애니메이션이다. 그는 우리에게 <데스노트>로 이미 알려진 연출가이기도 하다. 채널 애니플러스를 통해 한일 공동 상영된 이 작품은 한때 인기를 얻어, 우리 방송과 인터넷에 밑도 끝도 없이 진격의 00으로 여러 상황들이 패러디되었다.
사람들을 잡아먹는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왜 인기를 얻었을까? 일단 이야기에 작동하는 세계를 보면, 먹이사슬의 최종 소비자이던 인간에게 서기 845년(실제 인간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천적이 나타난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인간의 몇 배에서 수십 배 달하는 거인이 나타나 인간을 마구 잡아먹기 시작한다. 인류는 전멸하다시피 했으나, 그나마 남은 인류는 3중으로 된 거대한 성벽을 쌓고 그 안에서 살게 된다. 인류는 폭압적 공포에 움츠러들어 거대한 성벽 안에서 겨우 연명한다. 그런대로 100년간 거대한 성벽으로 거인의 침공을 막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거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자 조사병단을 성 밖으로 내보내지만 매번 성과 없이 죽어서 돌아온다. 그러다보니 거인에 대한 정보는 극히 피상적이다.
공간적 배경인 3중으로 된 성벽의 도시는 프로이드가 말하는 마음의 구조인 3층 구조를 떠오르게 한다. 알다시피 프로이드가 말하는 마음의 구조는 ID(원초아), Ego(자아), Super-Ego(초자아)로 구분된다. 애니메이션 속에 인간들이 사는 3중 벽은 바깥부터 월 마리아, 월 로제 그리고 월 시나로 구성된다. 공간 구조를 인간의 마음의 구조로 치환하는 것은 약간 무리가 있어 보이나, 향후 주인공과 안타고니스트의 대립을 통해 그들의 성격이 어떻게 작용하느냐를 보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
주인공 ‘앨런 예거’와 ‘미카사 에커만’은 자신이 보는 앞에서 거인에게 잡아먹히는 어머니를 목도한다. 그러나 압도하는 공포 앞에 움직이지도 못하였지만 군인 한네스의 도움으로 미카사(원작 만화에 의하면 앨런의 부친과 미카사의 가족이 만나던 날 인신매매단에 의해 부모는 죽고 미카사만 살아남아 앨런의 아버지가 키우게 된다)와 살아남는다. 공포와 절망적인 상황에서 거인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빼앗긴 ‘앨런’과 ‘미카사’는 복수를 맹세하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거인(공포)에 대항하는 인간 사회의 반응을 살펴보는 것도 이 작품의 관람 포인트다. 어떠한 의도도 드러내지 않은 채 인간을 잡아먹는 무지막지한 거인과 왜 잡아먹히는지도 모른 채 잡아 먹히는 인간들, 자신에게만 거인이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약한 인간들이 등장한다. 인간들은 자신의 생명을 도모하기 위해 좀 더 안전한 곳에 살려고 경쟁한다. 그러나 삼중 구조로 된 도시의 좀 더 안전한 월 시나는 한정되어 있고,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곳이다. 군대도 훈련 성적순으로 갈린다. 거인을 물리치기 위해 훈련을 받는 군대조차 우등생은 거인으로부터 멀어지는 헌병단으로 배치되고, 성적 나쁜 훈련생은 오히려 밖에 나가 거인과 대치해야 된다는 아이러니한 사회 시스템을 보여준다. 강자가 약자를 먹는 이런 사회는 그 자체가 이미 괴물이다.
인간을 단순히 거인이 소비하는 먹이로 그려지고 있어 자본주의 사회를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일단 접어두고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 보자.
3중의 벽으로 100년간의 평화가 이어지고, 성 밖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한 어린 앨런과 아르민은 인간을 벽 안에 갇혀 사는 가축처럼 느낀다. 그래서 그들은 성 밖의 정보가 든 책을 훔쳐보며 바깥 세상에 대한 꿈을 꾼다. 하지만 어른들은 성 안이 안전하니 그냥 안에서만 살자고 한다. 아예 사제들은 성벽이 신의 예지로 만들어졌으며, 벽은 신 그 자체라고 찬양한다. 그래서 희생을 하면서 성 밖을 조사하지도 말자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진 갑옷 거인이 나타나 거대한 성벽을 뚫어버린다. 그리고 인간들은 월 마리아를 버리고, 두 번째 성인 월 로제로 도망을 간다. 거인의 침입 이후 미지를 탐구하기 위한,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인간의 초자아적 신념을 버리고, 안전 본능과 현실인식으로 인간의 공간은 월 로제와 월 시나로 축소된다. 따라서 월 마리아는 인간이 가진 최소한 초자아의 공간은 아니었을까?
그래도 공포에 지혜와 용기 그리고 희생정신으로 맞서는 인류의 노력은 눈여겨 볼만하다. 갑옷 거인이 뚫은 월 마리아의 성벽을 통해서 4m~7m급의 거인들이 들어와 인간을 잡아먹는다(여기서 앨런의 어머니가 잡아먹힌 것이다). 하지만 거인은 인간을 배고픔 때문에 먹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거인은 인간만 먹지 다른 동물은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말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인간을 어구적어구적 씹어 먹을 뿐이다. 이 거인은 인류에게 있어서 공포 그 자체이다.
거인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1화부터 알려진 정보에 의하면 거인은 생식기가 없으니 자체적으로 번식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며,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지 못한다. 팔 다리가 잘려도, 머리가 잘려도 다시 재생이 되는 등 자기복원력이 대단히 뛰어난 종족이다. 다만 그 동안의 전투의 결과 거인들은 벽 바깥에서 오며, 유일한 약점은 목 뒤를 칼로 베어내야 재생하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9화에서 앨런 예거의 거인화 능력이 알려지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여성형 거인의 실체인 ‘애니’를 보면 거인은 또 다른 인간의 자아가 아닐까 추측된다. 또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인간,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권력, 인간의 호기심을 가로막는 모든 장벽이 바로 거인이 아닐까, 그런 거인을 우리는 누구나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것이 거인의 비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프로이드가 말한 개인의 성격은 앞에서 말한 Id, ego, super-ego가 함께 존재하며, 이들 간의 역동적인 관계에 의해 개인의 성격이 결정되고, 세 가지 요소가 항상 움직이며 개인이 처한 상황이나 조건, 발달단계에 따라 세 가지 요소 중에 상대적 우위에 차이가 있으며, 항상 상호 갈등관계를 이루게 되고, 긴장관계 또한 변한다. 이를 바탕으로 주요인물을 살펴보자.
앨런 예거는 초자아의 상징으로 보인다. 초록괴물로 변하는 헐크처럼 자기 스스로 고통을 가하던 타인으로부터 고통을 당하던 극심한 고통과 분노 속에서 거인으로 각성된다. 그러나 앨런에게는 거인을 모두 죽이겠다는 분명하고도 잊을 수 없는 신념으로 똘똘 뭉쳐있어 거인으로 각성되어도 거인을 공격하는 특이한 성향을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괴물을 뛰어 넘으려면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초자아적인 신념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그는 아무것도 버릴 수 없는 사람은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걸 안다.
일단 앨런이 거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살펴보면 작가가 주인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알 수 있다. 13화 <원초적 욕구 토로스토구 공방전9>에서 인류가 거인으로부터 처음 승리를 거둔 날의 작전에서 앨런은 거인으로 변해서 성벽의 구멍을 막으려고 하였으나, 거인으로 변한 앨런은 기대와 달리 미카사를 공격하다 쓰려져 미동도 하지 않는다. 이때 거인 속에 있던 앨런은 자신이 가장 행복했던 시절에 꿈처럼 빠져있다. 거인으로 변한 후 원초적 욕구(행복한 기억)를 떠올리는 건 거인이 본능에 의해 움직인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그를 본능에서 깨워낸 건 작전을 제안했던 친구 아르민이다. 그는 어떤 자극에도 그가 깨어나지 않자, 어린 시절 함께 꿈꾸던 성 밖의 세계, 미지에 대한 호기심과 그로 인해 얻을 자유를 속삭인다. 어린 시절 갈망을 자극하여 그를 각성시킨 것이다. 성 밖에 대한 호기심과 세상 최고의 자유라는 이상이 거인이 되었어도 앨런 예거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자유야! 그걸 막는 자가 아무리 강해도 관계없어, 불의 물이라도, 얼음의 대지라도". 인간의 본능을 뛰어넘는 초자아적 의지가 있어야만 거인이 되어서도 다시 인간으로 돌아올 수 있다. 드디어 앨런은 각성하고 거인으로 인간의 의지를 갖고 작전을 수행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인간은 무엇에 갇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지능형 여성 거인을 제외하고 거인들은 모두 손에 잡히는 것은 모두 입으로 가져가는 구순기의 특징을 보여주며, 피부 없이 근육과 골격만으로 이루어져 꾸미지 않은 원초적 이드의 에너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시리즈의 마지막에 이르러 이 작품의 미스터리한 안타고니스트가 밝혀진다. 지능을 가진 여성 거인은 104기 훈련생 동기인 ‘애니 레온하트’다. 앨런의 동료였던 애니는 언제나 시니컬하고 세상일을 시시하게 여겼다. 그러면서도 격투술 만큼은 생기가 돌고 본능처럼 뛰어난 실력을 보여준다. 그녀가 거인이 되었을 때 온몸이 경화되어 칼이 소용없어진다. 이는 자기보호 본능의 상징처럼 보인다.
거인화 된 앨런과 애니의 대결에서 애니의 사연이 간헐적으로 보인다. “애니, 세상이 전부 적으로 변해도 원망하지 마라. 아버지는 네 편이다. 약속해줘 돌아온다고” 에피소드를 통해 어린 애니가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격투훈련(수능공부)만 하던 그때, 거인화 되는 방법(약물)을 택했고, 그로 인해 그녀가 거인(괴물)이 된 게 아닌가 추측케 한다. “애니, 내 생각이 틀렸다. 돌아와 다오!”라고 절규하는 아버지에게 “이 세상을 모두 파괴해버릴 거야!”라는 애니의 대답은 그녀가 거인이 된 사연을 짐작케 한다.
훈련소에서 그녀는 세상 따위는 관심 없고 난 살고 싶을 뿐이라며, 가장 안전하다는 헌병단을 원했고, 앨런이 조사병단에서 죽더라도 거인과 싸우겠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은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상호작용을 통해 사회화 되는 것이 중요한데, 그녀는 아버지로부터 일방적으로 격투 훈련에 내몰린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아버지로부터 주입받은 훈련 때문에 자기 자신의 방어를 위한 격투기계로 내재화되면서 자신에 대한 비판적 평가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그녀의 자아이상은 아버지의 선별적 인정(격투)을 내면화하면서 인간성을 포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자신의 자아이상을 달성하여 자존감과 자긍심을 키우고 찾는데 실패한 그녀는 부모 통제를 벗어나 자기통제의 순간, 스스로 통제하지 목하고 초자아가 폭주한 것이 아닌가 한다.
아르민과의 에피소드를 보면 애니도 관심과 사랑을 받고 인정받는 여자아이고 싶었다는 것이 드러난다. 애니는 훈련소 시절 앨런과의 대결하는데, 그때 그녀는 거인을 모두 죽이겠다고 큰소리치는 앨런에게 적의를 드러낸다. 앨런에게 연약한 여자의 마음을 모른다고 하면서 오히려 격투로 가혹하게 몰아붙인다. 그런 그녀도 겁 많고 자신에게 다정했던 아르민에게는 거인으로 변해서도 죽이지 않는 등 인간적인 면모를 보인다. “세상에 관심 따위는 없어!” 그녀의 외로운 절규가 들린다.
시리즈의 중반에 거인의 정체를 연구하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조사병단의 한지 조에 분대장으로 언젠가 죽은 거인의 머리를 걷어찼을 때, 생각보다 너무 가벼웠기 때문에 거인의 존재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뒷목덜미를 잘려서 죽으면 염산에 타듯이 몸이 사라지고 뼈만 남는 것에 궁금증이 생긴다. 그녀의 주장은 증오로는 모든 걸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거인을 알고자 그 뒤로 거인의 생체실험에 집착한다. 그리고 그는 보이는 것과 실재하는 본질이 다르다고 주장하게 된다.
바우만에 의하면 모든 생물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 나타났을 때 두 가지로 반응한다고 한다. 도망하느냐, 아니면 맞서 싸우느냐 중에서 선택한다. 하지만 인간은 여기에 하나 더 추가하여 2차적 공포가 발생한다. 사회와 문화적으로 순환되는 파생적 공포가 그것이다. 이런 공포는 실제 위협이 출연했든 안 했든 인간의 행동을 제약한다. 즉, 경험자들의 인식을 왜곡하고, 인식에 따라 취하는 행동의 선택지를 바꿔버린다. 2차적 공포는 그런 위협과 직접 마주쳤던 과거의 경험에서 나온다.
그런 과거 경험은 실제 위협받지 않는 상황에서조차 경험자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말하자면 불안의 감각, 취약함의 감각이랄까. 그런 불안과 취약함에 노출된 사람이라면, 실제 위협이 없을 때조차 위험에 직면한 때에나 보이는 반응을 보인다고 한다. 그래서 파생적 공포는 자가발전 하는 공포이다. 상상 속에서 위험의 실체를 한껏 부풀리고, 압도되어 꼼짝도 못한다.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무기력한 인간의 모습은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이런 공포물이가 가능한 사회는 정보가 통제되고, 언론이 통제된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식인 거인이 등장한 것 같다. 종북이라는 공포몰이로 사회가 마비된 듯 보인다. 거인은 빨갱이다. 거인은 북한이다. 예전에는 선거 때만 출몰했는데 요즘은 시도 때도 없이 출몰한다. 그런 거인을 우리는 누구나 내 안에 가지고 있지만, 서로 소통하며 괴물로 성장하는 상황을 막는다.
거인은 당신이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이다. 그 거인을 만드는 것은 술이든 약이든 이성과 초자아를 망각시키는 그 무엇이다. 작가 이시야마 하지메는 인터뷰에서 거인의 아이디어를 PC방에서 아르바이트할 때, 술 취한 진상 고객에게서 얻었다고 한다. 같은 사람(종족)임에도 의사소통을 할 수 없어 무서웠다고 한다. 그래서 가장 익숙한 동물(인간)이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아무 이유 없이 폭력을 행사하면 악몽이 될 거라고 생각하였단다. 의사소통을 하지 않는 괴물은 우리 주변에도 많다. 학교에도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국회에도 행정부에도 말이다.
의학계에서는 음모론으로 맞서지만 자연건강연합의 로버트 버커크 박사는 자본이 암 같은 불치병으로 두려움을 조장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두려움이 인간의 이성을 마비시켜, 우리가 직접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할 수 없다고 믿게 만든다고 한다. 그는 “그래서 사람들이 ‘의학’이라는 산업 앞에 무릎을 꿇도록 만들고, 이 두려움에 대한 해결책으로 글로벌 제약자본이 제공하는 것이 바로 의약품”이라고 주장 한다.
뜬금없이 이 얘기를 하냐면 거인으로 변하였던 앨런을 인간들은 두려워하며 죽이려 한다. 얼결에 두 번째 거인으로 변하였던 앨런은 의사였던 아버지가 준 지하실 열쇠와 자신에게 주사를 놓으며 기억하라고 했던 것을 떠올린다. 아버지가 거기에 모든 것이 있다고 한 얘기를 기억해 낸다. 그 이후 앨런은 아버지가 거인의 비밀을 알고 있었으며, 자신이 거인이 된 이유도 거기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로버트 버커크 박사가 말한 의료산업의 자본이 암 같은 불치병으로 불안을 조장하는 것과도 연관 지을 수도 있겠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와 이 애니메이션을 연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식인 거인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왜 인기를 얻었을까? 인류의 존폐 위기를 형상화하고, 잔인한 묘사가 거침없으며, 공중에서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한 ‘입체기동장치’ 등 액션으로 인간과 거인의 대결구도만이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약육강식까지 비정한 세계관을 더욱 구체화하며 작품 곳곳에 배치한 상징과 은유는 디스토피아에 만연한 절망감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매회를 거듭하며 벗겨지는 미스터리 요소는 보는 내내 긴장감을 만든다. 또한 인류를 위협하는 거인을 피하기보다 폭압적 공포에 맞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놓는 주인공의 초자아적 신념을 통해 우리도 자유를 선취할 수 있다는 자각과 성취감을 주기 때문은 아닐까 한다.
<마당을 나온 암탉> 소개에서도 밝혔듯이 집단을 위해, 사회를 위해, 타인을 위해 개인의 희생을 당연히 여기며, 약육강식을 당연히 받아들이는 이데올르기는 불편하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이런 장면들, 특히 한 개인을 영웅으로 만들고 거기에 따라야 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는 것은 역겹기도 하다. 이는 집단적이고, 전체주의적 발상으로 이 작품의 가장 큰 약점이기도 하다는 것을 부기로 밝혀둔다. 당의정이라고 할 사람도 있겠으나 재미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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