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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두독 드 위트_붉은 거북 본문
마이클 두독 드 위트 _붉은 거북
제목_붉은 거북_2016
감독_마이클 두독 드 위트
상영시간_ 80분
제작_와일드 펀치 / 지브리 스튜디오
https://youtu.be/lGGrlUiVTpY
한승태(학예연구사)
어제는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의 ‘인디애니페스타’의 개막식에 갔다 왔다. 개막작인 마이클 두독 드 위트(Michael DUDOK DE WIT)의 <붉은 거북>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이클 두독 드 위트는 2016년 69회 칸국제영화제에서 <붉은 거북>으로 '주목할 만한 시선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했으며, 이미 <아버지와 딸>로 안시 그랑프리와 히로시마 그랑프리, 아카데미 단편상을 받은 애니메이션계의 거장이다. 1994년 <수도승과 물고기 The Monk And The Fish>, 2000년 <아버지와 딸 Father And Daughter>, 2000년 <청소부톰 Tom Sweeper>, 2006년 <차의 향기(The Aroma of Tea)> 등이 있으며, 이번 개막작 <붉은 거북>은 지난 6월 프랑스 안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의 개막작이기도 하다.
배급사의 요청이라지만, 영화 상영 전 카피되는 걸 막기 위해 핸드폰도 압수당한 채 영화를 보았다. 잠재적 범죄자 취급에 기분이 당연히 나빴고, 그것에 반발해서 나간 사람도 있었지만 나로서도 영화제를 진행할 때, 복제 때문에 곤란을 겪은 적이 있어 협조해 주었다. 그것을 감수할 만큼 마이클의 영화를 보고 싶기도 했다.
영화는 대사보다 이미지로만 이야기를 전개했다. 갈등이 고조되고 갈등이 갈등을 불러오는 복잡한 상업용 영화의 구조는 아니지만 충분히 재미있었다. 유려한 애니메이팅도 그렇지만 단순한 외마디 비명과 음악으로만 80분을 끌어가는 힘은 쉬운 게 아니다. 바다와 하늘 그리고 구름, 밤하늘과 별빛 등의 영상은 압도적이다. 섬에서의 이런 단조롭고 지루할 것 같은 영상들로도 긴장감을 만들어 내는 역량이 뛰어나 보는 내내 즐거웠다.
붉은 거북은 무엇을 상징하는 걸까?
거북이와 게, 새들이 사는 열대 무인도에 한 남자가 난파하여 오게 된다. 대나무 숲과 바위로 된 섬에는 작은 게들만이 한가롭다. 가끔 죽은 물고기나 물개가 떠 밀려와서는 썩기도 한다. 부패한 그들에게 파리와 날벌레가 모여들고, 그들이 거미줄에 다시 걸려 먹히는 생태계에 인간이 나타난 것이다. 그가 섬에서 처음 만난 것이 알에서 깨어 바다로 돌아가는 어린 거북이었다.
바닷가에서 환상적인 밤을 보낸 주인공은 난파된 열대 섬에서 탈출하려고 뗏목을 끊임없이 만든다. 그러나 바다에만 나가면 무언가의 부딪침에 뗏목은 여지없이 부서지고 탈출은 실패한다. 그러나 그의 탈출 의지를 꺾을 수 없다. 실패하고 돌아오면 더 크게 뗏목 만들기에 몰두한다. 그건 그의 욕망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이리라. 바다에 나간 어느 날 붉은 거북을 만난다. 그 부딪침의 원인이 붉은 거북이라는 걸 안 주인공은 다시 무인도로 돌아와 화가 나서 고함을 지른다.
그런데, 해변으로 그 붉은 거북이 올라오는 것인 아닌가? 주인공은 화가 나서 그 붉은 거북을 몽둥이로 후려치고(선불교에서 방편으로 사용하는 ‘할(喝)’같은 건지도 모르겠다), 뒤집어 버린다. 땡볕이 작열하고 거북은 점점 죽어 간다. 그렇게 화를 삭인 주인공은 아무도 없는 섬에서의 낮과 밤을 보내며 외로워지고, 자신의 행동에 후회도 하며, 다시 붉은 거북이 죽어 버릴까 바닷물을 퍼다 적시기도 하고 다시 원래대로 뒤집어 놓으려 하지만 쉽지 않다. 햇볕이 강해 뒤집힌 배가 쩍하니 갈라진다. 그리고 부패하는가 싶더니, 그 거북의 껍질 속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붉은 거북은 붉은 머리의 여자로 변한 것이다. 껍질 속의 여자가 죽을까 남자는 물을 떠다 먹이고, 햇볕을 막고자 대나무를 꺾어다 그늘 막을 만들어 준다.
폭우가 쏟아지고 의식을 잃었던 그녀가 깨어난다. 어색하지만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탐색한다. 붉은 머리의 여자는 자신의 껍질인 붉은 거북의 등딱지를 바다에 띄워 돌려보낸다. 그녀가 바다로부터 거북으로 와서 인간으로 다시 변하기까지의 껍질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낸 것이다. 남자도 그동안 자신이 만들던 뗏목을 바다에 그냥 띄워 보낸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궁금해 하고 이해하며 사랑하게 된다. 두 남여가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집착하던 세계를 모두 깨야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생의 즐거움을 느낀다. 바닷가에 밀려온 빈병(꼬냑 병 같은)에 관심을 갖는 아들에게 그들은 자신이 알아왔던 세계에 대해 알려주기 시작한다.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던 어느 날 엄청난 해일이 몰고온 고난 이후 그들은 성장한 아이를 자신들이 왔던 세계로 떠나보낸다. 그렇게 자신의 생을 마감한 남자는 죽고, 여자는 다시 붉은 거북으로 변해 바다로 돌아간다.
그의 단편 <아버지와 딸>이 먼저 돌아가신 아버지를 끊임없이 그리워하는 딸의 인생에 대한 시였다면, 이번 장편은 사랑하는 남여의 인생을 담담하게 그려낸는 담시로 보인다.
<차의 향기(The Aroma of Tea)>(2006) 이후, 십 년 만에 첫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을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감독은 영화상영 전 <붉은 거북>의 제안 배경을 간단하게 소개했다. 2008년 와일드 번치(Wild Bunch)의 빈센트 마라블이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과 만나게 된 자리에서 하야오 감독이 <아버지와 딸(Father and Daughter)>(2000)을 보여주며, 그를 꼭 만나보고 싶다고 요청했고, 감독은 어느 날, 영화를 소개하는 자리에 온 타카하다 이사오와 그의 프로듀서 스즈키를 만났다고 한다. 그로부터 어느 날 지브리에서 <아버지와 딸>처럼 담백하고 잔잔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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