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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산업의 특성 본문
월트 디즈니와 도박산업
한승태(시인/학예연구관)
애니메이션! 하면 사람들은 으레 월트 디즈니, 혹은 ‘월트’는 빼더라도 디즈니를 떠올린다. 애니메이션이 지금의 산업으로 발전하는데 디즈니는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왔다. 그는 무엇이 관객들을 흥분시키며 웃고 울고 한숨짓게 만드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그의 입지는 상당하다. 정확히 ‘월트’나 그의 형 ‘로이’ 디즈니가 운영하던 디즈니 컴퍼니가 애니메이션 역사에 기여한 공이 상당하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지만, 그 만큼의 과도 있다.
그림 월트 디즈니
처음 유럽에서 시작된 애니메이션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선사하였다. 사진이 처음 나오고, 영화가 막 시작하던 시절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특별히 스토리를 갖추지 않더라도 움직이는 그림 하나로 사람들은 열광했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20세기 새로운 예술로서 애니메이션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놀라움과 ‘낯설게하기’는 사람들의 관심을 오래 끌지 못한다.
디즈니는 움직이는 캐릭터에 슬랩스틱 개그를 부여하고 간단하게나마 이야기를 도입하였다. 거기에 20세기 개발된 기술들을 접목하여 인기를 얻었다. 그가 최초에 만든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의 캐릭터 저작권을 배급업자에게 빼앗기고, 이후 새로 개발한 것이 <미키마우스>다. 그는 ‘오스왈드’에게 ‘개구장이’ 성격을 부여하였듯 미키에게도 ‘개구쟁이’라는 성격을 부여하였다. 그는 이렇게 움직이는 그림의 놀라움에서 아이들이 동일시할 수 있는 ‘이야기와 개그’가 들어간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이게 그의 가장 큰 공이다.
그의 과는 무엇일까? 이게 허물이라고 해야 할 지는 좀 더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애니메이션을 아동물로 한정시켰다는 것이다. 나아가 아동을 동반한 가족물이라 하더라도, 유럽에서 시도되던 실험적인 애니메이션과는 달리 철저하게 대중을 향한 오락물로서 그 성격을 공고하게 만든 것이 그의 허물일 수 있겠다. 그것도 그가 성공하였으니 허물이지 실패하였다면 들을 수 없는 말이긴 하다.
그림 <토끼 오스왈드는 디즈니가 개발한 캐릭터였으나, 렌츠와 배급계약에서 저작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러다 2006년 디즈니는 저작권 문제를 해결하고 다시 디즈니가 저작권자가 되었다.
그의 첫 작품이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이듯이 그는 행운의 사나이였다. 단순한 오락물 제작 업자였던 그를 지금의 애니메이션과 캐릭터산업의 대표주자로 만든 것도 우연한 행운 때문이었다. 그건 잠시 뒤에 자세하게 얘기하기로 하고, 먼저 애니메이션 산업의 특성에 대해 얘기해보자.
애니메이션은 자본 시장에서 통용되는 상품이면서도 꿈을 꾸게 한다는 측면에서 가치재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공한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시선은 그만큼 곡진하다. 어떠한 상품보다도 수탈의 정도가 심하면서도 그 수탈의 구조를 아이들의 꿈이라는 환상으로 그 수탈을 가리고 있기 때문에 그 왜곡의 정도를 파악하기가 쉽게 않다.
애니메이션은 인간의 꿈을 표현하고 있지만 기획의 창의성과는 다르게 많은 인력과 첨단기술의 도움을 받는다. 컴퓨터의 도움으로 제작과정에서 필요로 하는 많은 전문 인력이 줄어든 지금에도 애니메이션은 여전히 노동집약적이다.
현재 미국 메이저 애니메이션 회사에는 한국의 애니메이터가 많다. 거기에는 한국 애니메이터의 실력도 있지만, 그만큼 값싼 노동력이라는 이유도 있다. 197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 30여 년간 우리가 미국과 일본, 주요 애니메이션 회사의 메인 프로덕션(실제 애니메이션 그림을 그리는 과정) OEM 작업을 해왔다. 이는 우리가 실력이 있기도 했지만 냉정하게는 값싼 노동력을 제공한 덕분이기도 했다. 당시자본이 없던 우리가 별다른 투자 없이 재능 하나만으로도 물량을 수주할 수 있는 분야였다. 그래서 미국과 일본의 회사는 수주를 받으려는 우리나라 회사끼리 경쟁을 부추기도 하였다.
애니메이션을 대표적인 ‘원소스멀티유즈(OSMU)’ 상품이라고 한다. 현재 미키 마우스 하나가 한해 벌어들이는 수익이 5조원이다. 성공시의 상품으로서의 파급효과를 나타내는 ‘OSMU(One-Source Multi-Use)’는 애니메이션의 착취의 정도를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성공한 하나의 소스가 다양한 상품으로 확장 판매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동일 투자 대비 수익을 많이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애니메이션 산업의 대표적인 특징으로 디즈니는 이를 일찍이 간파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보장받기 위하여 국제적으로 50년의 저작권 보증기간을 70년으로 연장하여 왔다. 소위 디즈니법이 존재하는 이유다.
그림 1930년대 미키와 미니마우스
보통 문화산업의 특성을 위험하지만 성공하면 그만큼 부가가치가 크다고 한다. 디즈니가 캐릭터 사업에 뛰어들게 된 배경을 보면, 그것이 도박과 유사관계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즈니에게 캐릭터가 돈이 되는 상품이란 걸 가르친 이는 K. 케이먼이다.
다음의 얘기는 프랑스 작가 조르주 페렉의 <나는 기억한다> 중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조르주 페렉의 이 작품은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우리가 쉽게 잊고 지내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일을 한두 줄로 기록한 480개의 개인적인 추억을 정리한 것이다. 이 작품에 주석과 사진을 붙인 롤랑 브라쇠의 <나는 기억한다를 나는 기억한다>는 책도 있다. 조르주 페렉은 추락한 비행기에 탔던 지네트 뇌비를 얘기하면서 같은 비행기에 탔던 권투선수 세르당과 그를 언급했다.
하여튼 K. 케이먼은 도박사였다. 그는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내고 규칙까지 만들어 냈다. 1932년 어느 날 아침, 케이 케이먼은 5만 달러를 들고 약속도 없이 다짜고짜 월트 디즈니의 사무실로 찾아갔다. 집을 저당 잡혀 융자를 얻고 서랍 속 잔돈까지 몽땅 긁어모은 전 재산을 도박판에 건 셈이다.
그는 기상천외한 계약을 제안했다. 계약서에 서명만 하면 디즈니는 단 한 푼도 쓰지 않고도 매년 최소한 5만 달러를 벌도록 해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만화영화의 주인공을 이용한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발생하는 이익금을 반씩 나누자는 계약서를 내민 것이다. 캐릭터 사업의 수익성에 무지했고, 그렇지 않아도 재정난에 빠졌던 디즈니 형제는 반신반의하며 계약서에 서명했다.
케이먼은 그해 크리스마스에 디즈니에게 2,500만 달러를 벌게 해주었다. 물론 자신도 같은 수익을 거두었다. 그는 캐릭터를 상품화한 최초의 사업가였다. 그해 여름 그는 아이스크림을 담는 콘, 과자 등에 미키마우스의 이름과 모습을 새겨 넣는 것만으로 500만 달러를 벌었고, 다음 해에는 미키 마우스 잡지까지 창간했다. 미국이 경제 불황에 허덕이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업구상은 멈추지 않았다. 케이먼은 미키 마우스 시계를 생각해냈다. 자판에 미키 마우스를 새겨 넣고 장갑 낀 두 손은 시침과 분침으로 만들었다. 시장에 내놓자마자 뉴욕에서만 10,000개가 넘는 시계가 팔려나갔다. 1935년 한 해에 250만 개가 팔려나가 디즈니와 시계회사를 세계적 불황에서 벗어나게 해주었다.
그림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난장이들
미키 마우스뿐 아니라 디즈니에서 제작한 모든 애니메이션의 캐릭터가 상품화되고 그는 일확천금을 벌어들인 거부가 되었다. 특히 <백설공주>는 주인공뿐 아니라 다른 인물까지 인기를 끌었다. 난쟁이가 일곱 명이나 되니 수익금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어수룩해 보여서 정감이 가는 난쟁이 ‘슬리피’ 하나의 초상상표권만으로도 그는 수만 달러를 챙겼다. 영화에만 몰두했던 디즈니는 그제야 캐릭터 사업에 눈을 뜨고, 케이먼에게서 사업권을 회수하려 들었다.
1949년 10월 케이먼은 디즈니의 장편 <신데렐라>의 홍보를 위해 파리로 날아갔다. 그리고 미국으로 귀국 전에 친구에게 “나는 비행기에 대한 공포심이 있다네”라는 편지를 썼다. 10월 27일 그는 디즈니와 어떤 조건으로 재계약을 할지 생각에 잠겨 영화광 하워드 휴즈가 개발한 비행기에 올라탔다. 그 비행기는 추락하였고, 같이 탑승했던 지네트 뇌비와 에디뜨 띠아프의 연인이자 권투선수였던 세르당이 같이 죽었다. 그의 죽음으로 디즈니는 엄청난 행운을 거머쥐었다. 캐릭터 사업만을 전담하는 부서를 따로 만들었고, 캐릭터 사업을 확장하였다.1
그림 증기선 윌리의 한 장면
위의 내용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캐릭터 사업이 도박이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디즈니가 세계 캐릭터 시장의 50%를 점유한 지금도 다르지 않다. 두 가지 이유에서인데, 첫째는 운이 많이 좌우한다는 거고, 둘째는 그 만큼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번 성공하면 엄청난 부를 획득할 수 있다는 것도 유사하다. 하여튼 이런 운은 월트 디즈니의 일대기를 봐도 알 수 있다. 그는 재능 있는 사람들을 끌어들였고, 그들의 재능을 자기 것처럼 포장했다. 아이러니하게 그가 만든 <행운의 토끼 오스왈드>를 놓친 이후 그는 억세게도 운 좋은 사나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행운이 따랐던 것은 이야기꾼으로서 월트 디즈니의 재능 때문이었다. 그는 애니메이션이 이야기를 위해 존재하는 삽화라고 생각했다. 그는 관객들이 익히 잘 알고 있는 동화나 옛날이야기 같은 원작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었지만 그만의 스토리 화법이 있었다. 그는 애니메이션에서 관객이 무엇을 기대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중이 애니메이션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동일시하고 애정을 품게 하는 이야기의 힘 말이다.
이렇게 천기(天機)와 같은 대중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면 캐릭터 사업 배팅에 무서울 것이 없다. 디즈니가 이를 증명한다. 근본적으로 애니메이션과 캐릭터 산업의 핵심은 대중이 좋아하는 캐릭터의 저작권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이기 때문이다. 최근 열풍이 부는 ‘포켓몬 고’도 다르지 않다. 매체는 바뀌어도 저작권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끝)
- 객관적 우연, 이재룡, 2015, 현대문학 8월호에서 재인용하여 일부 내용 수정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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