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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은유

바람분교장 2014. 1. 11. 13:04

은유

                                   황인찬

저녁과 겨울이 서로 만진다 초등학교 구령대 아래에서 누가 볼까 두려워하며

겨울이 저녁을 움켜쥐고, 저녁이 약간 떨고, 그 장면은
기억에 있다

어두운 운동장이 보인다 기울어진 시소와 빈 그네도 보인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세계가 보인다

누가 우릴 본 것 같아, 저녁이 말했고
겨울이 저녁을 깨물었다 그러자 저녁이 검게 물들고

그 장면은 기억과 다르다
장면이 모이면 저녁이 되고, 기억이 모이면 겨울이 되는,

그런 세계에서

너무 어린 나는 늙어간다
늙어버릴 때까지 늙는다
이 학교는 나의 모교이며, 나는 여기서 따돌려지고 내쫓겼다 말하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저녁의 기억
겨울이 저녁을 햝았는데 그것은 기억 속에서의 일이었다

저 멀리서 손전등의 불빛이 다가올 때는
구원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것은 누의 기억인가 그것이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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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을 추억하는 시대에 살면서, 이 기억은 누구의 기억일까, 저녁의 추억일까, 겨울의 기억일까. 가해자와 피해자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서로 만진다는 것을 보면 아마도 그들은 연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저녁과 겨울은 무엇의 은유일까. 그는 그 세계에서 따돌려지고, 내쫓겼는지 불분명하다. 분명한 기억이 구분을 낳는다. 구원을 받았다는 기억으로 인해, 이것은 연인들의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그 마지막 기억은 누구의 것이란 말인가.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가해자에겐 추억이 피해자에겐 기억으로 남는 것, 그것이 피해자의 세계다. 이 시인의 능력은 이런 너무나 분명해보이고, 뻔한 이야기를 흔들어 놓는데 있다. 우리가 분명한 세계라고 믿는 것, 그것을 흔들어 놓고 있다. 저녁과 겨울이 아니라면 이 시는 죽은 비유가 되었을 것이다.  한승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