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조성림 시집,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악기 본문
조성림의 다섯번째 시집 < 눈보라 속을 걸어가는 악기>를 다 읽었다. 남들은 다들 쉽게 금방 읽었노라고, 시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한편으론 동의하고 한편으로는 유보를 하고 싶다. 그의 시는 분명 잘 읽힌다. 그의 시정은 아름답고 관조적이며 옛스럽다. 옛스럽다는 것은, 그럴리야 없겠지만, 분명 나만의 트집이겠지만 아름다움을 대하는 전통적인 서정이 그대로 배어있다.
습관적 아름다움일지도 모른다는 염려가 있어서이다. 그의 반열은 이미 이땅에서 살짝 발이 들려 신선같은, 현실보단 과거의 아름다움 위에 기반하고 있는 선비같다. 시의 행간의 긴장은 있으나 시 전체가 이 땅과 마찰하는 갈등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어른이다. 어른으로서 어른의 세계를 탐닉하는 걸 누가 뭐라 하겠는가
그녀가 떠난 바다가
너무 넓고 쓸쓸하여
수평선과 갈매기와 셋이서
울면서
바다자락을 덮고
일찍 자버렸다
<가을바다>전문
떠난 그녀 앞에 내가 해볼 게 무엇이겠는가. 울음 밖에 더 있겠는가 텅빈 세상을 세상이 같이 울어준다. 세상과 자연과 몰입하여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나인 군더더기없는 이 짧은 시가 그가 이룬 성과일 것이다. 그래도 발을 땅에 딛고 있는 시가 아닐까 생각한다. 갈등은 힘겹고 고통스럽다. 온몸과 맘이 피폐해진다. 차라리 그가 고통을 겼지 않았으면 좋겠다그는 시를 사는 사람이다. 사람좋고, 멋진 경치에 취할 줄 알고술을 마시며 노래를 할 줄 알며, 아름다움을 사랑한다시 쓰면서 시를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다만 시를 사는 사람이 모두 행복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그는 행복해 보이니 다행이다.
며칠전 입춘이 지났다. 금방이라도 봄이 올듯하더니 쉽게 내주지 않는 여자 같다. 자 여기 공중의 마음이 있으니 만져보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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