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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Pinocchio : 당나귀섬의 비밀, 2012>

바람분교장 2013. 6. 27. 14:10

     제    목 : <피노키오Pinocchio : 당나귀섬의 비밀, 2012>

감    독 : 엔조 달로

런닝타임 : 86분

 

‘피노키오’하면 떠오르는 원작은 이탈리아 동화다. 이탈리아 작품 중 외국어로 가장 많이 번역된 작품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 원작 보다는 디즈니의 애니메이션<피노키오>를 훨씬 더 많이 기억하고 있다. 원작이 매우 긴 장편이다 보니 우리에게는 요약판 <피노키오>에 디즈니의 그림이 곁들인 이미지를 더 많이 본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원작의 내용의 충실하게 살린 점은 주목할 만하다. '피노키오'에 대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변주되면서 원작의 실제 내용이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는 대중들도 많다. 이러한 관객들을 위해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은 매우 친절한 작품이다.

 

디즈니의 <피노키오>는 원작의 스토리 뼈대에 새로운 캐릭터들을 많이 참가시켜 재미를 추구하여 원작의 내용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면 앤조 달로 감독의 <피노키오 : 당나귀 섬의 비밀>은 원작의 스토리가 이어지고 등장하는 캐릭터도 그대로이다. 또한 사람이 되길 원하는 피노키오'와 '목수 제페토의 진한 부성애'에 집중한다. 교훈적인 내용보다는 자아를 찾는 여행 혹은 내면 성장기에 방점을 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피노키오가 각종 유혹에 느끼는 갈등을 가볍게 다룬 탓에 오히려 '착한 행동'의 당위성만 강조하지 않았나 싶기는 하다. 하지만 원작보다는 디즈니의 내용을 더 많이 알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원작의 맛과 더불어 유럽적인 색채와 감성을 맛보고 싶다면 추천할만한 작품이다.

이야기는 콜로디 원작 <피노키오의 모험 Le adventure di Pinocchio〉(1883)을 따라간다. 어느 날 우연히 말하는 통나무를 발견한 제페토 할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생각하며 이 나무를 정성스럽게 깎아 목각인형 피노키오를 만든다. 혼자 외롭게 살던 제페토 할아버지에게 선물처럼 찾아온 피노키오이지만 할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처음 만난 세상이 그저 신기하기만 한 피노키오는 천방지축 동네를 뛰어다니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다. 동네 말썽꾸러기가 되고도 아직 호기심이 다 채워지지 않은 피노키오 앞에 어느 날 학교를 가다 새로운 친구들이 나타나 재미있는 것들이 가득하다는 ‘장난감 섬'을 함께 찾아가자는 제안을 하고 이곳에서부터 또 한 번의 피노키오의 '모험'이 시작된다. 마침내는 고래에게 먹힌 할아버지를 구출하고 함께 집에 돌아와 과거의 행동을 뉘우치고 효도하려고 노력하던 어느 날, 파란머리 천사에 의해 피노키오는 진짜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다.

 카를로 콜로디의 <피노키오의 모험> 탄생 13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은 피노키오의 고향인 이탈리아와 프랑스, 벨기에, 그리고 룩셈부르크 4개국에서 합작된 작품이다. 4년간 300명이 넘는 유럽의 아티스트들의 공동 작업을 통해 애니메이션 한편이 제작됐다. 이탈리아 애니메이션의 거장 엔조 달로가 감독을 맡았고, 세계적 삽화가 로렌조 마토티와 유럽 최고 작곡가 루치오 달라가 영상과 음악을 채워 넣었다.

또한 서정적이고 화려한 영상미는 <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 > 의 강점이다. 삽화가 로렌조 마토티가 창조해낸 '피노키오 세계'는 최근 애니메이션 영화들 사이에 불고 있는 3D열풍과는 거리가 멀다. 되는 대로 붓질한 듯한 투박한 배경과 독특한 그림체는 무리하게 공간감을 부여하지 않아도 관객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당나귀 섬에서의 장면은 색다른 화려함이 돋보이지만 묘하게 음울한 구석이 있고, 섬을 탈출한 피노키오의 꿈을 형상화한 장면은 그로테스크한 감성까지 느껴진다. 카를로 콜로디의 원작에 충실하면서 다소 어두웠던 요소들을 모두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3D 영화와 애니메이션이 홍수 속인 상황에서 서정성과 고전미가 돋보이는 그림체로 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이 애니메이션은 피노키오를 비롯한 제페토, 귀뚜라미, 기드온 등 등장인물들은 단조로워 보일 정도로 단순화된 선과 색으로 그려진 반면, 피노키오가 뛰어다니는 마을이나 당나귀섬 등의 배경화면은 매번 한 장의 독립된 그림을 보는 듯 인물들과는 다른 풍부한 질감으로 그려져 움직이는 인물들과 신기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특히 피노키오가 자신의 몸이 완성되자마자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는 장면에서 신비로운 색감의 마을의 모습은 마치 세상을 처음 만난 피노키오의 심정을 그대로 담아낸 듯 무척이나 근사하다. 여기에 뮤지컬을 방불케 하는 다양한 노래가 함께 등장하여 극의 진행을 돕는다.

이 작품을 연출한 엔조 달로 감독은 "어른이 되어 동화책을 다시 읽어보게 되면서 이야기의 숨은 의미를 알게 되었다. 우리 모두 안에 제페토와 피노키오의 모습이 존재한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달로 감독의 말대로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은 어린 관객뿐만이 아닌 성인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애니메이션이다.

작곡가 루치오 달라는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영상에 선율을 선보였다. 세계적 오페라 가수들이 불렀던 명곡 카루소(CARUSO)로 유명한 그는 < 제페토송 > < 피노키오송 > < 기드온송 > 등 영화에 삽입된 다수의 곡들을 작곡했다. 심지어 원작에선 거인어부 역의 더빙을 직접 맡으며 작품에 대한 열정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극 중 바다괴물의 뱃속에서의 재회할 때 흐르는 < 제페토쏭 >은 제페토가 피노키오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대목에 이르러 묵직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음악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만큼 영화를 보며 '더빙으로 보는 것은 아쉬움이 있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아버지'이자 '아들'이기에 < 피노키오: 당나귀 섬의 비밀 > 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세대를 뛰어넘는 보편성을 가진다. "아이들만을 위한 영화가 아니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다"라는 엔조 달로 감독의 말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유다. 돌아온 피노키오가 그러한 대중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 훌륭한 이야기와 감각적인 영상, 그리고 감동적인 음악까지 한데 모았지만 그 결과물엔 조금 아쉬움이 남는다. 판단은 관객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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