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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바람분교장 2012. 10. 31. 23:04

                 두려운 세상에서 뛰어내리기

-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

 

 

Written by 한승태 

 

 

 

      3D가 대세인 시대에 2D 애니메이션이 꾸준히 나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일견 그림체도 특별하다고 할 것도 없고, 그저 평범한 작품처럼 보이는 <모모와 다락방의 수상한 요괴들>은 분명 스토리텔링을 중시하는 작품임이 분명해 보인다. 전체적인 이야기로 보아도 동화적 내용을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도 크게 새로울 것이 없다. <인랑>을 연출했던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의 작품이라는 것이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오키우라 히로유키는 미야자키 하야오, 오시이 마모루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일본의 대표적 감독으로 <아키라><공각기동대>의 캐릭터 디자인과 <인랑>의 연출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이다. <인랑>에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터라 믿고 보기로 했다. <인랑>이 발표되고 10년이 넘어서 그의 작품은 어떻게 변했을까 그것도 궁금했다.

 

      이 작품은 <인랑>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는 시시해 보이는 이야기다.  인간의 권력욕을 다루지도 않았고, ‘요괴’로 대표되는 그로테스크함도 액션도 없어 정말 밋밋했다. 그런데 묘하게 이야기에 빠져들게 한다. 일단 영화는 일상의 디테일이 살아있다. 이야기도 탄탄하다. 기대하지 않던 여행에서 애인을 만난 느낌이랄까. 애잔하고 사랑스럽다.

 

 

      영화는 이렇게 시작한다. 엄마를 따라 작은 섬 시오지마로 이사를 오는 주인공 '모모'가 배 위에서 마을 바라보며 서 있을 때, 하늘에서 물방울 세 개가 떨어져 머리와 편지에 닿고 떨어진다   

      11살의 도시 소녀 모모. ‘모모’는 아빠를 잃고 친척집이 있는 섬으로 엄마와 함께 이사 오는 것이다. 그 흔한 편의점도 없고 또래 친구들이라곤 달랑 5명뿐인, 도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섬 생활은 무료하기만 하다. 모모는 어떡하든 씩씩해 보이려는 엄마(리코크)와는 달리 소심하다. 몇 되지 않은 또래 섬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 한다. 그래서 혼자다. 모모는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하려는 아이가 아닌 무엇인가를 하지 않으려는 소극적인 아이다. 그렇게 때문에 극적 긴장과 몰입이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모모의 내적 심리상태에 균열이 오는데, 요괴와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모모는 요괴를 보게 되는데, 이는 친척을 통해 듣게 되는 집안 내력이기도 하다. 이들 요괴는 죽은 아버지의 염려와 걱정의 화신으로 모모가 친구들과 어울리며 행복한 삶을 찾아가길 바라는 마음의 상징 같은 것이다. 어쨌든 이 영화의 스토리 세계는 지극히 사실적이고 일상적이지만 집안 내력을 통해 요괴이야기를 끌어들인다. 하기야 일본이니 가능하겠다 싶기도 하다.

 

      새로운 공간에 진입한 첫날, 모모는 다락방에서 오래된(일본의 에도시대) 그림책 한 권을 발견한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느닷없이 모모의 눈앞에 나타난 수상한 요괴가 조금씩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다락방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냉장고 속 간식이 사라지고, 급기야 요괴들이 모모의 눈앞에 온전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에구머니나, 모모 덕에 봉인된 그림책에서 나왔다며 자신들을 소개하는 이와, 카와, 마메! 외모와는 다르게 은근 소심하고 먹보에 어리바리하기까지 하다. 공포물을 생각했던 관객들에게 생각지 못한 싱거운 웃음 선사한다. 뭐 이래!

 

      어쨌든 주인공들이니 소개해보자. 그들은 하늘에서 물방울 형태로 내려와 그림책 주인공의 모습을 빌려 나왔다. 세 마리의 요괴 중 리더격인 ‘이와’는 큰 덩치와 동그랗고 놀란 눈, 황금 이빨을 가졌다. 그러나 험상궂은 외모와 달리 부끄럼도 잘 타고 소심하다. 인간의 간을 우걱우걱 씹어 한입에 삼킬 정도로 악동이었던 ‘카와’는 못생긴 얼굴에 비쩍 마른 몸매지만, 거울을 보며 나르시시즘에 빠지는 왕자병 증세가 심하다. 몸매와 달리 식신본능 가득한 요괴로 멧돼지도 한방에 날려버릴 강력한 방귀를 가졌다. 마지막으로 ‘마메’는 골룸을 연상시키는 외모와는 달리 천진난만하고 순수한 캐릭터이다. 갑자기 모모의 무릎 위에 털썩 앉거나, 천장에서 거꾸로 매달려 무서운 속도로 지나가는 등 모모를 놀라게 하는 남다른 재주를 지녔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는 자기 자신이 뭘 하고 있었는지 까먹어 버리는 3초 기억력의 소유자이다.(물론 이런 것도 복선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집에서 쫓아내려는 모모와 시시각각 부딪히며 사건을 일으킨다.

 

       세 물방울에서 나온 요괴들은 모모의 내적 상처인 아버지와의 갈등으로부터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자신의 악담으로 인해 아빠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죄책감, 약속을 해놓고 잊어버린 아빠에게 실망한 모모는 “다시는 집에 오지마”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을 해버린 기억이 있다. 이후 아빠는 사고로 돌아가신다. 그래서 모모에게는 아빠에게 사과하고 싶어도 사과를 할 수 없다. 이는 현실 세계에서 엄마의 불화로도 이어진다. 이것이 이 영화의 내적 갈등이다. 영화가 중반을 넘어서면서 요괴들의 임무가 무엇인지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아빠도 그런 모모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하고 이해를 구하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요괴들은 아빠를 닮아 있다. 따라서 매우 심리적인 드라마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염려와 걱정의 상징인 요괴와의 갈등은 아버지와의 갈등과도 겹친다. 이와는 다이빙에 자신이 없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모를 다이빙이 아무것도 아님을 가르친다. 그리고 이들이 죽은 이들에게 편지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아버지에게 편지를 쓰려는 모모와 자신들의 규율을 지키려는 모습에서 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진다. 특히 친척 할아버지가 전해주는 집안 내력에 요괴와의 인연을 소개하는 장면을 보면 그 의도는 더욱 분명해진다.

      “저기서 항상 우리를 지켜본다. 누가 우리를 지켜본다는 건 이상한 일이야, 정신이 번쩍 들고 긴장이 된다니까!”

      

 

       요괴의 도움을 받아 아빠 엄마와의 갈등이 사라지고 자신의 내적 위크포인트가 되었던 자신감을 모모는 마지막 장면에서 다이빙을 통해 날려버린다. 낮선 이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두려움, 새로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이었던 다리 위에서 드디어 모모가 뛰어내린다. 모모가 뛰어내리고 물결은 모모로 인해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가고 먼저 뛰어내렸던 섬 친구들은 모모의 동심원 물결 안에서 하나가 된다.

       “모모도 섬사람 다 되었네!”

       친구들은 모모를 이렇게 받아들이고 모모도 친구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물결의 동심원 안에 아이들을 담아내어 모모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이런 장면은 애니메이션이 아니면 보여주기 힘들다. 그래서 이 작품은 애니메이션답다. 애니메이션이어야만 가능한 이야기를 한 것이다. 외적 갈등이 강렬하지는 않지만 아버지를 잃은 소심한 한 소녀가 스스로 세상에 맞서면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얻어가는 과정을 너무나 섬세하게 잘 그려냈다. 사춘기 청소년들이 새로운 세상과 대면하면서 겪게 되는 갈등과 고민을 이 영화는 격하지 않게 조근조근 이야기 한다. 역시 사람의 마음을 그려내는 이야기는 힘이 있다.

 

 

역시, 오키우라 히로유키 감독 죽지 않았어! 누군가 지켜본다는 건 써늘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