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분교_우리는 조금씩 떠나가고 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본문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
굶은 지 사흘째 되는 날
죽은 앵무새가 내 어깨에 앉아 노래했다
옷을 주워 입고 나는 집을 나섰다
내 깃털을 뽑아 글을 써 그러면 돈을 벌 수 있겠지
나는 유명 작가의 집에서 길러진 앵무새야
이것만 완성되면 나는 살 수 있을 거야
어릴 적 해넣은 금이빨을 팔아
주머니에 돈을 넣고 식당으로 걸어갔다
너는 유명 작가가 될 거야
나는 더 버틸 힘이 없어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죽을 거야
나를 바닷가에 묻어주고 이 깃털로 글을 써
어깨에 올라앉은 앵무새 깃털에서 악취가 났다
지금은 안돼 쌀을 사러 가야 해
편집자는 놀랄 거야 독자들은 게걸들린 듯 책을 살 거야
삽을 한 자루 사 주홍색 앵무새를 묻어주었다
깃털이 햇볕 위에서 일곱가지 색으로 살아났다
이제까지 쓴 것들을 다 버리고 다시 써야 해
깃털이 말했다
먹지 않으면 일주일 안에 나는 죽을 거야
처음부터 쓸 시간이 부족해
더구나 이 글에는 내 영혼이 들어 있어
이것을 보낸다면 아무도 네 책을 출판하지 않을 거야
구원은 너를 살릴 식량 속에 들어 있어
앵무새 깃털이 불러주는 대로 나는 다시 쓰기 시작했다
쌀이 떨어지고 사흘이 지났다
내가 죽던 날 밤 앵무새가 꿈속에 나타났다
(김성규, 《천국은 언제쯤 망가진 자들을 수거해가나》,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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