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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에는 / 두목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무덤에는 / 두목

바람분교장 2012. 12. 3. 11:26

 

 

무덤에는

             두목

故人墳樹立秋風
伯道無兒迹更空

重到笙歌分散地
隔江吹笛月明中

고인의 무덤에는 한 그루의 나무와 가을바람
아이 없는 '백도'의 쓸쓸한 자취 다시 허하고

다시 여기에 다다르니 그대와 헤어질 때 생황연주 
밝은 달 아래 누군가 부는 강 건너 피리소리.(한승태)

 

 

   ****한학으로 조예가 깊은 김풍기 교수님게서 아래와 같이 고치고 해설까지 달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아래 해석을 취하는 걸로 ~~

 

그대 무덤 가 나무는 가을 바람에 서 있는데
자식 없는 백도처럼 자취 더욱 쓸쓸하여라.
흥성한 음악 소리로 헤어지던 곳 다시 와 보니
강 저편 피리 소리 밝은 달빛 속에 들린다.(김풍기 역)

 

      원래 제목은 <重到襄陽哭亡友韋壽朋>, 양양에 다시 와서 세상을 떠난 친구 위수붕을 곡한다는 뜻이군요. 그 친구도 아마 백도처럼 자식 없이 죽은 모양입니다.

    백도는 누굴까요? 백도는 진(晉)나라 때 등유(鄧攸)의 자입니다. 석륵(石勒)의 난을 피해서 가족들을 데리고 피난을 하던 중 여러 차례 위험한 고비를 넘기지요. 그러다가 문득 가족들이 모두 살아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는 부모님과 조카들을 살리는 대신 자식을 버리게 됩니다. 자식을 버리는 심정이야 아비로서 찢어질 듯 했을 겁니다. 그러나 어쩌면 그의 어질기만 한 성품이 그런 선택을 하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끝내 그는 다시 자식을 얻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납니다.

    양양은 시인 두목이 죽은 친구와 함께 즐겨 노닐던 곳이었을테지요. 그와 함께 했던 세월을 회상하노라니, 그 친구는 이제 없고 다만 강 저편에서 누군가의 피리 소리만 들립니다. 아, 달은 또 왜 이리 밝은지요.

두목의 시 중에서는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대학 때 어째서 이 작품을 선택했을까요? 덕분에 저도 오랜만에 이 작품 만나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자, 그러니 무덤의 주인은 일단 '伯道'가 아닙니다. 근데 백도는 참 좋은 사람이고 자식이 없었다 합니다. 그러니 주변에서 얼마나 안타까워했을까. 하늘도 무심하시지 하고, 그러나 다 가진 사람이 자식마저 있었으면 교만해지고 뭇 사람들을 챙기지 못하지 않앗을까. 그러니 하늘이 무심한 것이 아니라 하늘의 뜻이겠지요.

   1구와 2구가 대구가 되고, 3구와 4구가 대구가 된다. 두 구씩 대구하여 정취를 살피면 참으로 쓸쓸한 정경이 펼쳐진다. 죽음이라는 것은 인간의 삶에 가장 큰 허다. 그 허는 만물을 모두 들이고 내뱉는다. 우리에게는 빠진 부분만 보인다. 어쩌랴.  그러나 온갖 생명의 엔트로피는 균형을 맞추려고 한다. 그래서 빠진 만큼 채우려하고 채운 만큼 비우려 한다. 그래서 빈 곳에 헤어지던 때의 풍성한 음악 대신 피리소리가 채운다. 피리소리가 적막을 더한다. 

    대학시절 써 두었던 걸 20년이 넘어 표구하였다. 그때는 왜 이걸 쓰고 싶었는지 이유가 분명했을 터인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