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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바람분교장 2012. 7. 2. 16:19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서


한승태(학예연구사)


얼마 전 기독교 단체의 청원으로 과학 교과서에서 다윈의 진화론을 삭제하자는 논의가 있었고, 이를 반영한 과학 교과서 나올 것이라는 뉴스를 접했다. 황당한 얘기라고 생각 할 수 있겠지만, 그 논의가 참 재미있다.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일을 의심해 본다는 것. 과학적으로 참이냐, 거짓이냐를 떠나, 나는 다윈의 진화론을 생각해 보았다. 진화론도 다윈의 가설에서 출발하였고, 화석 자료와 살아있는 생물학적 자료로 뒷받침되어 현재까지 과학적 진실로 인정되어 왔다.

 

 지리적격리에 의한 종분화   다윈

 

유인원은 공통된 조상에서 분화된 자손이다

이기적 유전자를 주장한 리처드 도킨스

 

 

인간의 문화적 역사는 이야기를 향유하는 역사였으며, 철학자 김용석에 따르면 인간에게 이야기 취향은 본능적이기까지 하다. 우리가 향유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향유하는 과정을 보면 위와 비슷한 경로를 밟는다. 지난 2500여 년 동안 철학과 자연과학의 논쟁 중심에는 ‘실재와 허구’에 관한 논쟁이 있어 왔다.

인간에게는 진리에 대한 직접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우리는 시 ․ 공간의 실재에 대해서도 과학적 확신이 없다.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허구’가 필요하다. 우리는 허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사물의 이치를 깨닫기도 한다. 다윈도 가설(이야기)을 만든 것이다. 플라톤의 글 중에 소크라테스의 삶을 다룬 것이 있다. 이 내용도 한 삶의 상상적(사상) 여정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도 충분히 재미있는 대중서사를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유아용과 교육용 애니메이션 정도만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다양한 스토리 세계를 가진 애니메이션 서사가 드물다. 우리 애니메이션은 작년 이종 간의 사랑이라는 주제를 표현한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올해 <점박이: 한반도의 공룡>은 한반도의 존재했을 공룡의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만든 애니메이션으로 관객으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정말 행복한 일이다. 이러한 관심과 사랑이 오래 지속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하지만 걱정이 앞서는 것도 어쩔 수 없다. 그만큼 우리 애니메이션의 시장이 튼튼하지 못하다. 시장으로 얘기하면 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왜 일까? 첫째는 시장이 그리 크지 못하다는 거고, 둘째는 애니메이션의 제작 인력기반이 무너지고 있다. 셋째는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소재가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모처럼의 한국 애니메이션의 긍정적인 신호들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붐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은 애니메이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면 당연할 것이다.  

한국 애니메이션의 취약한 기반에 대해 고민하자면, 시장이 크지 않다는 첫째 문제는 현재 플랫폼이 확장되고 있고, 캐릭터 라이선싱 사업이 활발해지고, 해외의 시장을 개척한다면 제작을 위한 투자 유치는 어느 정도 해결할 가능성이 보이고 있다. 또한 둘째로 기획인력과 기획 작업이 활발해지고 있어 한편으로는 다행이지만 애니메이션 메인 제작인력 기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것은 매우 경계하고 두려워해야 할 일이다. 이 문제는 10년 전 유럽에서 심각하게 고민하던 문제였는데 이제는 우리의 문제로까지 번지고 있다. 한국은 한때 OEM 작업을 통해 가장 우수한 메인 제작인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인건비의 상승으로 인해 메인 제작이 중국과 저개발국가로 넘어가고 있는 실정이어서 이러한 메인 제작인력의 유출과 기반이 사라진다면 애니메이션 생산기반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오늘은 세 번째 문제인 애니메이션에서 다루는 이야기 소재와 주제가 제한적이라는 문제를 생각해 보고 싶다.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에서 그나마 가장 튼튼한 기반을 가진 나라라면 미국과 일본일 것이다. 미국의 애니메이션 시장의 강점이라면 다양한 인종과 민족이 모여 살고, 다양한 생활방식이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사고가 유연하고 다양한 서사와 단편애니메이션이 실험되고 있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단편 애니메이션의 오랜 축적과 다양한 장르의 애니메이션과 만화시장이 존재한다.

특히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의 특징은 스토리의 다양한 장르가 건재하다는 것이다. 요괴물, 추리물, SF 등의 여러 장르가 각자의 포지션을 가지고 공존하다 시대적 트랜드에 맞춰 성장하며 양적, 질적으로 풍부한 상상력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유아층에서 성인층에 이르기까지 관객층도 두텁고 다양하다는 것이 일본 시장의 건강함이다. 이런 건강함은 풍부한 이야기를 공급하는 인문학적 뒷받침에서 온다. 

예를 들어 우리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자, 나의 어린 시절의 가장 큰 충격은 <마징가 Z>이었다. 로봇이 등장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애니메이션을 이끌어가는 스토리의 다양함 때문이었다. 사실 <마징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특히 악당의 캐릭터들은 내게 충격이었다. 주인공도 멋있기는 했으나, 나로서는 악당들의 캐릭터가 더 매력 있었다. 특히 인도신화에서 차용한 아수라백작의 아이디어는 지금 생각해도 압권이다. 그 외에도 고대 수메르신화에서 차용한 <바벨 2세>에 나오는 캐릭터들과 스토리세계, 프로이드의 심리학을 애니메이션의 서사로 끌어들인 <에반게리온>등 그 외에도 수많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스토리세계를 생각해 보면 다양함 그 자체다. 이는 사고의 다양성과 더불어 다양한 가치관이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만큼 서사가 풍부하다는 얘기고, 이런 풍부함은 이야기의 인문학적 원천이 다양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스토리를 향유해왔다.

이제 우리 애니메이션의 성공을 계기로 우리의 서사 소재가 더 다양하고 풍부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언제까지 우리는 컴퓨터그래픽 실력만 내세울 것인가, 사람들은 무엇보다 좋은 이야기를 향유하고 싶어 한다. 인간의 역사가 그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