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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이 되어가는 심정 본문

혼잣말/바람분교장이 전하는 엽서

짐승이 되어가는 심정

바람분교장 2012. 8. 15. 17:27

짐승이 되어가는 심정

 

 

                                이근화 

 

 

아침의 공기와 저녁의 공기는 달라

나의 코가 노을처럼 섬세해진다

하루는 세 개의 하루로

일 년은 스물아홉 개의 계절이 있다

 

나의 입술에 너의 이름을 슬며시 올려본다

나의 털이 쭈뼛 서지만

그런 건 기분이라고 하지 않아

나의 귀는 이제 식사에도 소용될 수 있을 것 같다

 

호수 바닥을 긁는 소리

중요한 깃털이 하나 빠지는 소리

뱀의 독니에서 독이 흐르는 고요한 소리

 

너는 죽었는가

노래로 살아나는가

그런데 다시 죽는가

 

수많은 종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지만

강을 건너는 나의 어깨는 너의 것이고

이 어둠을

너의 눈 코 입을 기억하는 일은

 

나의 것인데

문밖에서 쿵쿵쿵 나를 방문하는 냄새

침이 솟구친다

식탁 위에 너의 피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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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 시인의 소개를 들어보자,

 

     인간이 아무리 진화해도, 사랑은 동물적인 것이다. 사랑에 빠지면 ‘코가 노을처럼 섬세해진다’. 후각은 가장 동물적인 감각이다. 청각은 그 다음이고. 「짐승이 되어가는 심정」은 후각적 표현과 청각적 표현이 두드러진 시다.

     그리고, “나의 입술에 너의 이름을 슬며시 올려본다/나의 털이 쭈뼛 서지만/그런 건 기분이라고 하지 않아” 맞다. 그런 건 ‘본능’이라고 한다.

본능과 후각과 청각이 곤두선, 발정기의 ‘호수 바닥을 긁는’ 물고기, ‘중요한 깃털이 하나 빠지는’ 새, ‘독니에 독이’ 고요히 흐르는 파충류. 등등의 수많은 종을 거느리고 건넌단다! 생명의 신비에 닿는 사랑의 이 용트림! 그리고 원초적 애달음.

사랑이라는, 짐승 같은 본능이 드러나는 현상을 감각적으로 그린 이 시를 읽고 나는 풀이 죽는다.

     그건 그렇고, “하루는 세 개의 하루로/일 년은 스물아홉 개의 계절이 있다”가 무슨 뜻일까? 너무너무 궁금하다만, 다 알려고 하지 말자. 평론가 유종호 선생이 산문집 『과거라는 이름의 외국』에서 이르셨지. “문학의 세계는 현실의 일상세계와 다른 사사로운 별세계다.”